-산정리 일기/김지하- 나를 여기에 묶는 것은 무엇이냐 뜨거운 햇발 아래 하얗게 빛날 뿐 고여 흐르지 않는 둠벙 속에 깊이 숨어 끝끝내 나를 여기에 묶는 것은 무엇이냐 눈부신 붉은 산비탈 간간이 흔들리는 흰 들꽃들조차 가까이 터지는 남포 소리조차 아득히 멀고 흙에 갇힌 고된 노동도 죽음마저도 나를 일깨우지 않는다 흐린 불빛이 가슴을 누르는 소주에 취한 밤 목쉬인 노래와 칼부림으로 지새우는 모든 밤 뜬눈으로 지세우는 알 수 없는 몸부림에 기어이 나를 묶는 것은 아아 무엇이냐 개어 있지도 잠들지도 않는 끝없는 소리 없는 이 어설픔은 무엇이냐 밤마다 취해서 울던 붉은 눈의 해주 영감은 죽어버렸다 열여섯 살짜리 깨곰보도 취한 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디에 와 있는 것이냐 나는 살아 있는 것이냐 무딘 느낌과 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