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까맣고 긴 벌레 한 마리
방바닥에 죽은 듯이 있다
기척을 내니
벽을 타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겨우 종이에 올려
죽이지 않고
바깥에 내 보내니
마음이 편하다
돌아와 앉으니 구석에
또 한 마리
물끄러미 보다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같이 지내자 고개 돌리니
더 마음이 편하다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벌레의 생명도 중하게 여기는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신 분의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으로 전깃줄을 타고 오는 전류처럼 찌르르 들어온다. 적어보기로 했다. 적어가는 순간 어? 혹시 두 벌레가 부부 아닐까? 그러면 이산 가족 만들어버린거네.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네. 생명을 노래하는 단아한 시가 좋다. 생명평화등불지 2021년 2호에 실린 시이다.
귓등
거울을 들여다봐도 잘 보이지 않던
귓등이
마음으로 보니
뚜렷하게 보인다
누군가의 소중한 말
귀 속에 잘 모시도록 감싸 안을
귓등으로
되려 말을 막았지
온갖 말들이
귓등으로 흘려 누리에 떠돌고
우리는 말을 잃고
마음 속 굳은 언약마저 잊었지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언젠가 한 번은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마음으로 본다와 상상하다는 다를까,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단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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