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훌륭한 시인의 훌륭한 시들

벌레- 조영옥

골뫼사니 2021. 8. 9. 09:12

벌레

 

까맣고 긴 벌레 한 마리

방바닥에 죽은 듯이 있다

기척을 내니

벽을 타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겨우 종이에 올려

죽이지 않고

바깥에 내 보내니

마음이 편하다

돌아와 앉으니 구석에

또 한 마리

물끄러미 보다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같이 지내자 고개 돌리니

더 마음이 편하다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벌레의 생명도 중하게 여기는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신 분의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으로 전깃줄을 타고 오는 전류처럼 찌르르 들어온다. 적어보기로 했다. 적어가는 순간 어? 혹시 두 벌레가 부부 아닐까? 그러면 이산 가족 만들어버린거네.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네. 생명을 노래하는 단아한 시가 좋다. 생명평화등불지 2021년 2호에 실린 시이다.

 

귓등

 

거울을 들여다봐도 잘 보이지 않던

귓등이

마음으로 보니

뚜렷하게 보인다

누군가의 소중한 말

귀 속에 잘 모시도록 감싸 안을

귓등으로

되려 말을 막았지

온갖 말들이

귓등으로 흘려 누리에 떠돌고

우리는 말을 잃고

마음 속 굳은 언약마저 잊었지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언젠가 한 번은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마음으로 본다와 상상하다는 다를까,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단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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