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교통
트레일러 달린 장거리 화물 자동차가 안개 속을 기어간다
호수 바닥 진흙탕 속을 기어가는
잠자리 애벌레의 거대한 실루엣.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헤드라이트들이 만난다.
서로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불빛의 홍수가 솔잎 사이로 돌진한다.
우리들, 어둠의 차량들은 황혼 속 사방에서
달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둔탁한 굉음 속을 미끄러져 간다
탁 트인 평원에 공장들이 둥지 틀고 있다
해마다 공장 건물들이 2밀리미터씩 가라앉는다
땅이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다
알 수 없는 짐승들이 이곳에 세워진
가장 화사한 꿈의 산물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씨앗들이 아스팔트에서 살려고 힘겨워한다
다음엔 밤나무가 먼저 나타나고, 하얀 꽃송이 대신
강철 장갑 꽃피울 준비를 하는 듯
우울한 밤나무를 지나
회사 수위실이 나타난다. 고장 난 형광등 불빛이
깜빡이고 또 깜빡인다. 이곳 어디엔가 비밀의 문이 있다. 열려라!
뒤집어진 잠망경에 눈을 갖다대고
아래쪽을 보라. 거대한 구멍이 있고, 깊이 매설된 거대한 파이프들에는
바다풀들이 죽은 사람의 수염처럼 자라고 있다
진흙투성이 잠수복을 입은 청소부가 유영하고 있다
맥박이 점점 약해지고, 막 질식할 듯,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사슬이
부서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고 다시 붙고 한다는 것만, 영원히.
1979년 삼월에
말로, 언어는 없고 말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지겨워
눈 덮인 섬을 향한다
야성은 말이 없다
쓰여지지 않은 페이지들이 사방팔방 펼쳐져 있다.
눈 속에 순록의 발자국을 만난다
언어, 말없는 언어
기억이 나를 본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자장가
나는 하나의 미라, 숲의 푸르른 관 속에서, 엔진들과 고무와 아스팔트의 부단한 소음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낮 동안 일어난 일들이 가라앉고, 숙제가 삶보다 무겁다.
외바퀴 손수레는 단일한 바퀴를 타고 앞으로 굴렀고, 나 자신은 회전하는 정신을 타고 걸어왔다. 하지만 지금 내 생각은 회전을 멈추었고 손수레는 날개를 달았다.
긴 마침내 , 우주 공간이 어두울 때, 비행기가 오리라. 승객들은 아래쪽 도시들이 고트족의 황금처럼 번쩍이는 것을 보리라.
경구
자본의 건물, 살인 벌의 꿀벌통, 소수를 위한 꿀.
그는 그곳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어두운 터널에서 날개를 펴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날았다. 그는 삶을 다시 살아야 했다.
1990년 7월에(From July 1990)
장례식에서,
죽은자가
내 생각들을
아무래도 나보다 잘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르간은 침묵을 지키고 대신 새들이 노래했다
따가운 햇살아래 구덩이는 드러 났다.
친구의 음성은
찰나의 먼 저편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낮달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비와 정적을 뚫고
여름날이 번득이고 있었다
It was a funeral
and I sensed the dead man
was reading my thoughts
better than I could.--
The organ kept quiet, birds song
The hole out in the blazing sun
My friend's voice lingerd
in the minutes' farthest side.--
I drove home seen through
by the summer day's brilliance
by rain and stillness
seen through by the moon
translation by patty crane
소곡(小曲 Madrigal)
좀처럼 가지 않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죽은자와 산자가
자리 바꿈하는 날이 오리라
숲은 움직이게 되리라
우리에겐 희망이 없지 않다
많은 경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한 범죄들은 미결로 남으리라
마찬가지로 우리 삶 어딘가엔
미결의 위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두운 숲을 물려 받았지만
오늘은 다른 숲, 밝은 숲을 걷는다
노래하고 꿈틀대고 꼬리 흔들고 기는
모든 생명들! 봄이 왔고 공기가 무척 강렬하다
나는 망각의 대학을 졸업했고,
빨랫줄 위의 셔츠처럼 빈손이다
열린 창(窓)
어느 날 아침
이층으로 올라가 열린 창가에 서서
면도를 하였다.
면도기에 스위치를 넣었다.
가르릉거리기 시작했다.
가르릉 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포효소리가 되었다.
헬리콥터 소리가 되었다.
한 목소리가, 조종사의 목소리가 소음을 뚫고
소리쳤다.
'눈감지 마세요!
이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보시는 겁니다.'
일어났다.
여름 위로 낮게 비행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조그마한 것들, 그들은 무게가 있을까?
수도 없는 초록의 방언들.
특히나 목재 가옥의 붉은 벽들.
풍뎅이들이 햇빛 속, 거름 속을 번쩍이고 있었다.
뿌리째 뽑힌 지하실들이
공중을 항해하였다.
움직이는 공장들.
인쇄소가 기어왔다.
그 순간 사람들만이
동작 없는 유일한 물체였다.
사람들은 침묵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회묘지에 잠든 자들이
카메라의 유년시절에 쵤영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공비행!
나는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말(馬)의 시야처럼
시야가 갈라졌다.
불꽃 메모/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암울한 몇 개월 동안, 내 삶은 당신과 사랑을 나눌 때만 불타올랐다.
개똥벌레가 점화되고 꺼지고, 점화되고 꺼지듯이. 밤의 어둠 속
올리브나무 숲 속에서 눈여겨보면
개똥벌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다.
암울한 몇 개월 동안, 영혼은 움츠러들고 망가진 채 앉아 있었다.
하지만 육신은 당신을 향한 직선 통로를 택하였다.
밤하늘들이 울부짖었다.
우리는 우주의 젖을 훔쳐 먹고 연명하였다.
사물의 맥락
저 잿빛 나무를 보라. 하늘이
나무의 섬유질 속을 달려 땅에 닿았다.
땅이 하늘을 배불리 마셨을 때, 남는 건
찌그러진 구름 한 장뿐. 도둑맞은 공간이
비틀려 주름잡히고, 꼬이고 엮어져
푸른 초목이 된다. 자유의 짧은 순간들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
운명의 여신들을 뚫고 그 너머로 선회한다.
돌
우리가 던진 돌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세월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골짜기엔
순간의 혼란된 행위들이
나무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날카롭게 소리치며 날아간다. 현재보다
희박한 대기 속에서 입을 다문 돌들이
산꼭대기에서 꼭대기로
제비처럽 미끄러져,
마침내 존재의 변경지대
머나먼 고원에 이른다.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떨어진다.
바로 우리들 자신
내면의 바닥으로.
동요받은 명상
밤의 어둠 속, 아무것도 갈지 않으면서
폭풍이 풍차의 날개를 사납게 돌린다.
동일한 법칙에 따라 그대는 잠깨어 있다.
회색의 상어 배가 그대의 가냘픈 램프.
형체없는 기억들이 바다 바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낯선 조상으로 굳어진다.
해조가 들러붙어 그대의 노걸이는 녹색.
바다로 가는 자가 돌이 되어 돌아온다.
서곡
깨어남은 꿈으로부터의 낙하산 강하.
숨막히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를 얻은 여행자는
아침의 녹색 지도 쪽으로 하강한다.
사물들이 확 불붙는다. 퍼덕이는 종달새의 시점에서
여행자는 나무들의 거대한 뿌리 체계를,
지하의 샹들리에 가지들을 본다.
그러나 땅 위엔 녹음,
열대성 홍수를 이룬 초목들이 팔을 치켜들고
보이지 않는 펌프의 박자에 귀 기울인다.
여행자는 여름 쪽으로 하강하고,
여름의 눈부신 분화구 속으로 낙하하고,
태양의 터빈 아래 떨고 있는
습기 찬 녹색 시대들의 수갱 속으로 낙하한다.
시간의 눈 깜빡임을 관통하는
수직 낙하 여행이 이제 멈추고,
날개가 펼쳐져
밀려드는 파도 위 물수리의 미끄러짐이 된다.
청동기시대 트럼펫의
무법의 선율이
바닥 없는 심연 위에 부동不動으로 걸려 있다.
햇볕에 따뜻해진 돌을 손이 움켜잡듯,
하루의 처음 몇 시간 동안 의식은 세계를 움켜잡을 수 있다.
여행자가 나무 아래 서 있다.
죽음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는 돌진 후,
빛의 거대한 낙하산이 여행자의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인가?
나무와 하늘
빗속에서 소요하던 한 그루의 나무,
우리를 지나쳐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과수원의 찌르레기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갈무리해야 한다.
빗줄기 잦아들자 나무도 겅음을 멈춘다.
맑은 밤 깊은 적막 속의 천지에
눈꽃 피어나는 순간을 고대하는 우리처럼
나무는 고요히 기다린다.
십일월
지루할 때 교수형 집행관은 위험해진다.
불타는 하늘 위로 굴러간다.
두드리는 소리가 감방에서 감방으로 들리고
땅의 서리로부터 공간이 위로 흐른다.
몇 개의 돌들이 보름달처럼 빛난다.
독수리 바위
동물원 유리 뒤로
파충류들,
움직임이 없다.
한 여자가 정적 속에
빨래를 넌다.
죽음이 조용해진다.
땅의 깊은 곳에서
내 영혼이 미끄러진다
혜성처럼 소리없이
서명(署名)
어두운 문턱을
넘어가야 한다.
홀이 하나.
하얀 서류가 빛난다.
여러 그림자들이 움직인다.
모두 서명을 원한다.
빛이 나를 덮쳐
사간을 접어 올릴 때까지.
서곡(序曲)들
1
진눈깨비 속에서 옆으로 질질 발을 끌며 다가오는 그 무엇에 나
는 멈칫한다.
다가올 일의 단편.
허물어지는 벽. 눈 없는 그 무엇. 단단한.
이빨의 얼굴!
홀로인 벽. 아니면 집인가,
내가 볼 수 없어도?
미래. 일군(一群)의 빈집들,
눈을 맞으며 앞으로 길을 더듬어 나가는.
2
두 가지 진실이 서로 접근한다. 하나는 내부에서 하나는 외부에서.
두 진실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기회를 갖는다.
일어날 일을 아는 사람이 격렬하게 외친다. '멈춰!
내 자신을 알 필요만 없다면, 무슨 일이라도!'
물가에 정박하고 싶은 배가 있다. 바로 여기서 정박을 시도한다.
앞으로도 수천 번 시도하리라.
숲의 어둠으로부터 길다란 갈고리 장대가 나타난다. 열린 창을
밀고 들어와,
춤으로 몸 덥히는 파티 손님들 사이에 섞인다.
3
내 삶의 대부분을 살아온 아파트가 철거되려 한다. 벌써 많은 것이
비었다. 닻이 풀렸다. 계속되는 슬픔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이 아파
트는 도시 전체에서 가장 밝은 아파트다. 진실은 가구를 필요로 하
지 않는다. 내 삶은 큰 원을 한 바퀴 그리고, 막 출발점으로 돌아왔
다. 날아가 버린 방. 이곳에서 내가 살 비비며 살아온 물건들이 이
집트 그림들처럼, 묘지 내실(內室)의 장면들처럼, 벽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하여 그림이 점점 흐릿해진다. 창들
이 훨씬 커졌다. 빈 아파트는 하늘을 향한 커다란 망원경. 퀘이커
교도들의 예배 때처럼 사방이 조용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뒤뜰에
서 비둘기들이 구구대는 소리뿐.
* 미국시인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에 의해 영역 번역 소개
60개 이상언어로 번역, 2011년 노벨 문학상 수상,
폴란드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이후 15년만에 시인이 노벨 문학상 수상함
스웨덴 작가로는 1974년 에이버 윤손과 하리 마르틴손 공동수상 이후 37년만임
* * *
첫번째 시에서 마음을 확 끌었던 귀절
' 장례식에서, 죽은자가 내 생각들을 아무래도 나보다 잘 읽고 있다는 느낌'
평생을 나를 탐색하며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여기지만
친구 장례식장에 와서 이제 세상의 경계를 달리한 친구가 내 생각을 더 잘 알지 않을까?
진정 죽은 친구를 위해 슬퍼하는 지, 살아 있는 각자의 슬픔을 위로하러 모인 것인지
침묵하는 오르간 대신 새들이 노래하고
따가운 햇살아래 드러난 구덩이, 찰나의 먼 저편을 서성거리고 있는 친구의 음성
집으로 돌아올 때 낮달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비와 정적을 뚫고 번득이는 여름날
죽은자와 산자가 자리 바꿈하는 날은 반드시 오게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삶 어딘가엔
' 미결의 위대한 사랑이 있다'고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
◆ 스웨덴의 국민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1931년 ~ 2015년 3월 26일, 83세) ◆
50여 년에 걸친 시작 활동을 통해 그가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이 채 안 된다. 평균 잡아 일 년에 네댓 편 정도의 시를 쓴 ‘과묵한’ 시인이라고 한다.
‘ 써야만 하는 시’ 가 아니라 ‘ 쓰고 싶을 때 쓴 시’인데 굵직한 상을 많이 수상했다.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다수의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에 이어 2011년 드물게 시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결국 시를 쓰는 시인도 사람이다. 크게 ‘인간’의 범주에서 누구나 자기만의 우월적인 면과 인간으로서 가지는 부족한 면을 다 갖기 마련인데 인생을 ‘ 통합적’ 으로 살아내느냐 ‘ 분열적’으로 살아내느냐는 가치관과 신념을 어디에 두느냐는 개인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 작품을 통해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 홀로 깊어 열리는 시의 깊은 맛‘과 평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을 직업으로 일생을 보내면서 시를 썼다는 시인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전에 가까운 ’ 통합적‘ 인 삶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
1931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스톡홀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서 심리상담사(psychologist)로 사회 활동을 펼치는 한편, 20대 초반에서부터 70대에 이른 현재까지 모두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는 지금까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한마디로 ‘홀로 깊어 열리는 시’ 혹은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이다. 또는 ‘세상 뒤집어 보기’의 시이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 한편 한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지만, 처녀작에서는 잠 깨어남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도되어 있다. 초기 시에서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강, 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시의 지배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또한 불의 이미지, 물의 이미지,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 수다한 군소 이미지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로 부리는 이유이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는 그 후 더 개인적이고 개방적이며 관대해졌다. 그리고 세상을 높은 곳에서 신비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연 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를 스웨덴에서는 '말똥가리 시인'이라고 부른다.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는 정치적 다툼의 지역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또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과 영원한 침묵 속에서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냈다.
50여 년에 걸쳐 발표한 시의 총 편수가 채 200편이 채 안 된다니 평균 일 년에 네댓 편 정도의 시를 쓴 ‘과묵한’ 시인인 셈이다. 이러한 시작(詩作) 과정을 통하여 그가 보여준 일관된 모습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결코 서두름 없이, 또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고요한 깊이의 시 혹은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부터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다 2011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96년 폴란드의 비수아바 심보르스카 이후 15년 만에 탄생한 시인 수상자였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시작 활동과 더불어 심리학자로서 약물 중독자들을 상대로 한 사회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역자의 말과 추천사를 소개한다
기억이 나를 본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저/이경수 역 | 들녘
순간에 대한 강렬한 집중을 통하여 신비와 경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면서 우리들의 비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의 시는 말똥가리처럼 세상을 높은 지점에서 일종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되, 지상의 자연세계의 자질구레한 세목들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하였으며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홀로 깊어 열리는 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트란스트뢰메르가 보는 이 세상은 ‘미완의 천국’이다. 낙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시인과 독자들, 자연과 문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대립구조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벨상 수상후보이자 스웨덴을 대표하는 트란스트뢰메르 시집의 국내 출간은 경하할 만한 일이다. 이 세상의 끝, 등 푸른 물고기들이 뛰노는 베링 해협이 산출한 시를 통해 한국 독자들은 미지의 세계로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모두 꿈꾸는 방랑자들이기에. -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출처] 1990년 7월에(From July 1990)/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작성자 동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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