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유희주의자의 하루

골뫼사니 2017. 5. 22. 06:07

며칠 전 후배 교사와 담소를 나누던 중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낚시를 하러 갔었지만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금년 가을 함평 고막원천에서 이십오센티 정도의 붕어를 하룻밤에 이십여 수 이상 낚았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오후 6시부터 밤 11시 30분 사이에 그렇게 큰 고기를 잡았다는 것은 낚시꾼으로서는 귀가 솔깃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난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이미 고막원천으로 달렸다. 나는 그제부터 이미 낚시 가방을 챙겨 차에 실어 놓고 있었다. 어제는 지회 집행부서장 회의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낚시를 갈 수 없었다.

 공적인 일보다 사적인 일인 유희일 뿐인 낚시를 우선시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서글픈 일이다. 어제는 월요일로 일주일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성실하게 인터넷 사이버 연수를 하고, 또 열심히 수업도 하고는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내 마음은 함평 고막원천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오후 3시 경부터 나는 누구에게라도 쫓기는 것처럼 일을 서둘렀다. 이것은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일로 역시 평소답지 않은 행동들이었다. 이미 나는 조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었다. 지회 집행부서장 회의 내용을 미리서 점검하였다. 이 일은 회의에 빠지기 위해 하는 사전 공작이었다. 참교육실천대회 장소 섭외를 위해 교선부장에게 전화를 세번, 이 지역통인 후배 교사에게 두번, 장소인 동신대에 전화 세번, 참실위원장에게 두번, 사무국장에게 두번 등 겉으로는 지회의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실은 낚시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막원천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었다. 아니 이미 나는 낚싯대를 고막원 천에 담그고 있었다.

 찌가 수면에서 잠깐 들어갔다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달빛을 받아 황홀하게 뱀의 머리처럼 치솟아 드디어 정점에 이르러 아름다운 마지막 탱고를 추는 것이었다. 나는 취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손은 낚싯대를 하늘로 쳐올리고 줄이 '태앵' 울면서 손에 전해 오는 감촉 속에서 8치 붕어는 몸부핌치고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아, 숨도 참으면서 기다리던 그 찌올림의 순간이 왔고, 나의 손이 잡아올린 것은 흔히 말하는 황홀한 오르가즘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는지....., 슬픔은 끝나고 나는 담배를 피워올릴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깊이 고막원천에 빠져가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에 이미 나는 차의 시동을 걸었고 학교를 나서서 고막원천으로 차를 몰았다. 낚시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시내에 있는 낚시점에 들러야 하건만, 시간이 너무 아까워 나주 시내를 곧장 가로질러 시외로 빠져나갔다. 아차 싶었다. 낚시점이 없다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다행히도 휴게소에 낚시점이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낚시할 옷으로 갈아입고 낚싯대를 드리우니 마음이 푸른 하늘 이상이었다. 찌를 바라보면서 어신을 기다리는 자신에게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꼈다. 아, 이 행복, 마음 속으론 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상 만사가 다 아름다웠다. 부지런히 밑밥을 주는 셈으로 콩알을 갈아 던졌다. 

 그러나 한 시간 이상이 지나도 후배교사에게 들었던 것처럼 고기가 입질조차 하지 않았다. 어신은 오지 않고 다만 흐르는 물따라 찌가 조금씩 하류로 움직일 뿐이었다. 예전에 낚시질 가서 허탕을 칠 때의 그 먹구름이 다시 일고 가슴은 답답하기 시작했다.

 이 괴로움을 또 다시, 이 미친 짓을 또 다시, 이것은 보통 사람의 행위는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도 아니었다. 이러한 행위는 한 불행한 인간의 자기 절제에 실패한 정신병자의 슬픈 집착이었다.

 꿈에 부풀었던 오후 3시부터 피식 풍선에 바람이 빠지고 있는 엊저녁 밤 8시까지 나는 천당과 지옥을 경험하였다. 그렇게 높이 올라가 이토록 허무하게 내려올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나는 사지를 떨었다. 혐오, 회한, 온갖 부정적 단어들이 머릿속을 활보하고 다녔다.

 

 그때 나를 구원했던 것이 휴대폰 소리였다. 처음 낚시를 시작할 때에는 어떻게 하면 안 받을까 했던 전화 벨소리였다. 그저 반가웠다. 더구나 그것은 또 하나의 유희인 고스톱을 치러 오라는 전화였으니. 그것이 구원에 가깝다 어찌 말할 수 없었겠는가.

 망설임은 순간이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고막원 천을 떠나는 것이 바로 이 혐오로부터 탈출하여 또 다른 정신나감을 불러오는 일이었다. 고스톱, 나는 이 신에게 얼마나 맣은 괴로운 날을 매달렸던가. 새벽 4시 혹은 화투를 시작한 다음 날 정오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절망을 죽일 수 있었던가. 고스톱은 한때 나에게 신이었지 않았는가.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곧장 낚싯대를 접기 시작했다. 낚싯대의 물기도 제대로 닦지 않고 갰으며 주위의 물건도 건성건성 정리하고서 차에 시돌을 걸었다.

 운전대를 잡자 마음이 출렁거렸다. 희망이 기쁨이 가슴 속에서 샘솟 듯 했다. 시속 140킬로미터로 광목간 도로를 카레이서처럼 질주했다. 정지 신호에는 갓길을 통해 앞선 차를 추월하였다. 전자오락기에서 하는 자동차 경주가 따로 없었다. 이 놀음, 유희에의 몰입은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새벽 4시까지 나는 선배들과 고스톱을 쳤다. 돈을 따서 결국 다 나눠주면서도 이 부질없는 일에 몰두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때문이었는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나를 모멸했다. "다시는 다시는...." 이란 말을 되풀이 했다. 그리고 또 되풀이 되는 이것을 도대체 나는 무엇이라 명해야 하나.

 담배의 역한 냄새가 옷에 배어 있다. 입속의 혀는 니코틴으로 여러 겹 덧칠되었고, 목은 연이어 가래를 토해내도 또 가래다. 목젖에 잔뜩 붙은 이 조증.

 집으로 들어가 이것을 위장하기 위해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늦게 왔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실에 잠을 자는 이 불가해한 육체와  정신이여!

 너는 살아있느냐, 살아있느냐

   10월 31일(화) 정오에 

 
2006년 10월 30일(월) 비공개 잃어버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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