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무등산 아래서, 목련나무 아래

골뫼사니 2021. 8. 22. 14:56

CAFE에서 옮겨옴 
愚琢

새해를 맞이하여

뿌린 만큼
심은 만큼
땀 흘린 만큼
기도한 만큼
꼭 그 만큼만......



쓸모없는 짓

그리워하는 일은
쓸모없는 짓






-자작나무 예찬인가? 부부애인가 집중이 필요하고나, 마지막 연이 마음에 든다. 인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황금빛 사원

숲 속에 잘 앉힌 집을 보면
스스로도 의식 못한 채
꼭 닮은 집을 지을 것 같다

갈망이 일 때면
시집을 닫는다.



----시인들에게 내 어리석음을 말하려는 듯하다. 잘 앉힌 집-은 시집 속의 시가 만들어내는 아우라의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만나면 흉내내고 싶어진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시인들은 이런 생각이 없을 것이다. 나 처럼 나의 세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들의 유혹, 허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시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나?


낮은 데로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이

사람도 돈도 낮은 데로
흘렀으면....

가난한 이의 발목을 적시는
눈물이라도


(오는 슬픔 막지 않고
가는 슬픔 잡지 말라)--사족



새순을 보며

기억하거나 기억된 것들을
이제라도 다 지울 수 있을까
흉내내어 지어보려 한 집들
헐어버리고 새로 지을 수 있을까
다시 나를 세울 수 있다면
나라는 것들 말고
모두라서 행복한 길 동무라도
될 수만 있다면
나무처럼 살고
새순처럼 돋아날 수만 있다면


돋보기

 

먼지가 묻어 있으면

닦아내야 한다

 

그대를 통해

흐릿한 세상

또렷하게 본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러기 전에

내게 묻은 먼지라도

털 수 있다면

깨끗한 참이라도 돼

바깥 세상 볼 수만 있다면

         

 

 

 

 

 

 

 

밤은 죽은 혼들의 거처

 

샘물 처럼

옛 추억이 솟아난다

 

아버지!

잘 계시죠?

 

 

 

 

 

그리움

 

그리웁다 하여도

그리워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

살고 있을까

 

 

알아서 뭐하려고

 

나는 당신을 알고 싶다

그래 알아서 뭘하려고

나의 궁금증은 누구에게나 있다.

관음증이다.

그래 알아서 뭘하겠다는 것인지

 

 

석양

 

책이라도 읽으면서

자전거라도 타면서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그러면서 석양이 지고 있다

 

뿌리 줄기 가지 꽃 잎

 

어느 때 꽃만 보았다.

잎이 보였다

숨은 일하는 뿌리를 생각했다

 

 

空腹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먹었다

뱃속을 가득찬 음식이 아우성이다

나는 언짢다

포만감에 이를 쑤시는 기쁨보다

공복을 느끼며 강가를 거니는 것이

그 가난한 뱃속에서

나는 정신이 성숙함을 갖는다

 

 

소홀했던 것들

 

미술 시간 님이셔

그대 얼굴 떠올려 그릴 수 없네

소홀했던 세월은 가지 못하고

죽어버렸네

오래 썩어 부패한 추억의 시간이여

친구여 나는 아프네

마음은 게을러 그대 마음의 시간도

놓쳐 버렸네

소홀했던 정신의 세월

그림자도 남김없이

시간의 바다에 빠져 죽고 없네

 

함께 했던 사람

그 얼굴을 그릴 수 없네,

소홀했던 세월은 흘러가지 못하였고

죽어버렸네

오래 부패한 추억의 시간이여

친구여 게을러 놓쳐버린 시간을

나는 아파하네

그림자도 남김없이

죽은 나와 당신의 시간......

 

 

 

 

 

 

 

 

 

 

 

흙물

 

아무리 조심조심 걷는다 하여도

운동화 흰 끈에는 흙물이 밴다

부러 어떤 옷들은 토색 염색을 하기도 하건만

더하여 세상사에는 감내해야 할 일들도 많을 텐데

굳이 운동화 끈 하얗도록 빨래하는

아내의 손이 희다

나는 햇빛 받아 환한 빨랫줄에

말라가는 운동화 끈 두짝을 보는 기쁨으로

마음이 환해지는 때가 있다.

 

 

긴 슬픔

 

생각없이 긴 슬픔에 잠긴다

 

아니

이를 악물지도 않으면서/못하면서

고통없이 띄엄띄엄 욕망한 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라고 해야지

 

긴 슬픔이란

그렇구나 욕망이 도달하려는 높이에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눈이 뜨인 날로부터 지금, 죽는 시각까지

길 슬픔이다

 

배고픔이나 폭력에 시달리지 않아서

나는 고통이 없는 것이구나

 

벗어나라 스스로 묶은 네 사슬을 풀라

문을 열어라 스스로 닫은 문을 열어라

울타리를 걷어라 스스로 쌓은 울타리를 걷어라

 

긴 슬픔이란

그렇구나 네가 무덤이며 감옥이구나

명멸하는 별에게서 답을 구한다면

찰라의 찰라의 찰라의 찰라이니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숨을 그치라

네 긴 슬픔은 한모금의 증기처럼

사라지리니

 

생각없이 긴 슬픔에 잠긴다

 

 

형광등

 

지금은 이미 옛것이 되었지만

형광등은 눈부신 빛으로

한 때는 세상을 밝혔다

 

그 빛으로 책을 읽고

사람을 보며 말하고

문명의 바퀴를 돌렸다

 

그런데 형광등은 더듬거리며 더듬거리며

답이 알듯 모를 듯 켜졌기에

사람들은 아둔하고 반응이 느린 사람들을

형광등이라 하였다

 

나는 옛것

다시 형광등이고 싶다

사람들에게 답할 기회를 주고 싶고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퇴근

 

이제 두 시간 남았다

돌아가 몸을 눕히기까지는 또 얼마나 남았나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해야

밤의 숭고함을 붉게 하늘 물들여

마지막을 고하지만

 

더 해야 할 일도 못했던 일도

더는 생각지 말아야 할 나이

내게 슬펐던 삶, 이순

 

이제 두 시간 남았다

퇴근 때까지 내게 주어진 운명을

땀 내어 일굴 즈음

 

구름처럼 지워진다면

푸른 하늘 가리지 않는다면

삶이 비록 어눌했다 할지라도

 

이유

 

바다에 흰 포말들은 부서지고 부서져

흰무늬 나방떼의 셀 수 없는 날갯짓처럼이나

많은 이유들

나는 더할 나위없이 그런 생이 무거웠다

어떤 날에는 그것 보다 더 큰 날개가

이유를 덮었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허공에 떠 있기도 했다

어떤 이유도 지상에 더 남지 않았을 무렵

나는 한 발을 허공에 놓고 싶었다

날개를 떼고 끝이 없는 곳으로 나를 떨어뜨리고 싶었다

나는 펜을 놓고

무서운 나를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았다.

왜 자꾸 폴 발레리가 떠오르는 것일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등산 아래서

 

인간의 도시 눈물의 도시

도시의 알람

눈물로 영산강 시원이 범람할 때

남북으로 뻗은 두 팔로 이 도시를 안았지

밤을 새워 이 도시를 위무하고 추위를 막아 주었지

새벽을 알리려 태양을 모셔

이 도시에 희망의 파노라마를 펼치기도 하고

그대 눈물과 고통의 죽지 않는 증인

그대는 나와 같이 인간이다

바윗돌 꼿꼿하게 세워

가난한 사람들의 의리를 지키듯 서있는 곳

무등 아래서

나는 멀리 도망갔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비스듬히 멀리 북서를 향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저녁

노을에 비치는 영산강을 게슴츠레

바라보기도 하고

사랑이여 멀리로 갈 필요가 어디 또 있던가

저 산 아래 깃든 삶에 어디 더하고 빼고 할 것이 또 있던가

 

어떤 병

 

나는 선생이긴 한데

거의 병적으로 살고 있다네

벗이여

나 어린 후학들에게

무슨 희망이라도 들여줄 요량으로

자꾸 말을 걸긴 하는데

어떤 진릿길이라도 아는 것처럼

요 혓바닥을 놀려 대는데

지금 끄적이는 것처럼

즉흥적으로 생각들을 탈탈 털어내는 것을

몇 계단을 내려오고 올라가고

땀을 좀 흘리다가 정신이 바짝 들어 생각하니

나 어떤 병에 걸려 있네

글로도 못하고

정리하지도 못할 생각들을

색즉시공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

역사에 남지 않는 얘기라고

만나는 사람마다에

한 두 마디 말들을 풀어 놓는다네

벗이여

이게 어떤 병일지 몰라 묻는다네

말을 제어할 일침을 꽂아 줄 수는 없겠나

어떤 병에 맞는.

 

 

만우절

 

장국에 밥 말아먹듯 평생 거짓을 행했다.

어려서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참 많게도 들었던 말은 참되어라

돌아서서 잊었던 말이었다.

부모님께 뭇 어른들께 나에게……

참 많게도 거짓말을 해댔다.

오늘은 만우절

나는 나에게

붉은 동백꽃들 앞에서

흰 동백꽃 마음으로 약속을 한다,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을,

서릿발 서는 땅 속 뿌리의 마음으로.

나를 속이지 않겠노라

……

오늘은 만우절

 

 

목소리

 

그레고르 잠자는 잠자다가 벌레로 변신했다.

내 수업 시간에 학동들이 잠을 잔다

숙박비도 내지 않고서

나는 걱정이 많다,

사랑하는 학동들이 혹 벌레가 되면 어쩌나......

학동들은 생각할 것이다

나는 잠을 잔다, 고로 나는 학생이다.

이 소리 없는 외침을

누가 들어줄까.......

나는 내 걱정이 사실 먼저다

먼 길 운전하다가 간혹 깜박 잠이 들곤 한다

잠이 부족하거나, 피곤했을 때이다.

그러나 나는 무섭다, 벌레가 될 것 같아서

잠자다가 일어나

내 목소리를 생각해 본다.

슈베르트의 선율보다 더 오래된

아득한 옛날에 할머님께서 들려주시던

자장가

나는 내 목소리가 무섭다

요술을 부리는

학생들을 벌레로 키우는

오늘도 나는 시작종 치면

사실은 벌레가 되어

무서운 목소리를 내러 교실로 간다.

 

바다 옆집

 

삼면이 유리창인 방의 불을 끄면

바다가 보이고

밤하늘의 별이 보인다

자신의 불을 끄면

사위에 사람이 보이고

내면의 불을 끄면

마침내 참 내가 보일것이다.

 

길은 섬 산 위로 나 있다

고사리가 쇠고 있었다.

삼사년 후면 감을 따 먹고

붉은 밤도 떨어질 것었다.

혼자 가는 길에

개라도 데리고 가야

마음이....다 했다

 

 

돋보기

 

어린 아이들은 다 예쁘다.

할머님의 눈에 비친

어린아이는 다 예쁘다.

견주거나 나누지 않아서

미운 것들이 더 보이지 않고

생활의 주름을 퍼올리거나

 

 

,,,,

아직 멀었다

돋보기로 보아서도

세상이 아름답기까지는

 

 

따알 호수, 황혼

 

물결의 끝자락에서

포말들은 아름답게 부서진다.

황혼빛이다.

이국인들이 벌린 입에서

튀어나온 감탄사들이다.

잔여 태양이

포말들을 잘게 잘게 씹어대고

나는

넋을 잃었다,

포말들처럼 내가 흩어지고 있었다.

먼 호수의 가운데에선

아직도

화산이 콧김을 거세게 내뿜고 있었다.

 

나, 에고

 

나와 여럿이 있을 때

한 이 한 이들

걸림없이 말하고

물비늘로 빛나는 햇빛같은

생각 만나면 공감하고,

잘게 웃거나 파안대소하거나 아무 상관없는 듯

창문 밖 마닐라의 시민들의 삶을 훔쳐보거나......

 

터져나오고 싶어 강의 물처럼

우리들의 탁자 위에서 생각들이

통통통 방울방울

튀거나 춤을 추거나 흘러다녀

영혼을 씻거나

육체의 경혈을 짚을 수 있다면.....

 

다만 내가 팍상한 계곡, 열대 밀림 속

그 직벽에 몇 줌 안되는 흙을 붙들고도

하늘로 수십 장 높이 꼿꼿하게

오르고 있는 나무들처럼

여럿한 이들에게 삶의 격언이 될 수 없다면.....

 

나 아니 이들의 말을 틀어막거나

마음의 밑둥에 숨어 있는

괴물을 깨워 불러내

여럿한 이들의 수면을 찢어버리지 않고

 

다만,

시인이 앉아 있는 페인트칠 오래된 의자이거나

그가 무료할 때 바라보는 낮은 앞산이거나

마닐라를 볼 수 있게 열린

칠십센티미터의 정사각형, 낡은 호텔의 창이거나

왼쪽 팔꿈치를 받치는 탁자이거나

 

오랜 생각 끝에 얻은 생각마저 지우고

눈 감을 때 떠오르는 오래 전 읽은 책의

한 페이지일 수 있다면..... 

 

쌍용자동차

 

렉스턴은 멋지다 꽃핀 시골길을 달려가는 꿈을

겍스턴에 싣는다 생명들이 꿈틀대는 꿈을

신형 렉스턴은 봄볕 속에 잠을 풀어 놓는다

집이 없는 사람은 더욱 쪼그라들고

집이 잇는 사람은 더욱 집 수를 늘려간다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많고

슬픈 일은 없는 것이다. 슬퍼할 일은

없는. 없는 없을까

다시 목련이 봄의 하늘 길을 열고

제비꽃은 지상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더 노래할 것이 없는 밤의 불꽃들

자동차 상향등이 멀리 강물까지 출렁이게 만들고

도시를 일으켜 세운다. 밤에 도시는 깨어난다

기억하는 자만 기억하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가슴에 파고 들어 또아리를 틀고

조울증을 앓는 평택의 여자 아이

혼자 밤 공원에서 그네를 탄다

공포는 꽃처럼 피어나고

희망은 물결 무늬로 일어났다 사라진다

렉스턴의 꿈을 만들던 열네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절망을 품에 안고

가족과 친지와 벗들의 가슴을 뭉개고

살아있는 평택에 심장을 짓누르고

사라져간 별들이 있다

차를 만든 사람 중 차 없이 옥상에서 날아가거나,

목이 줄에 매달린 채 저승길 가는 사람들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애써 거억하는 사람들이

모든 수첩에서 그들의 이름들 지운다

꽃들을 짓밟고 선 쌍용자동차

렉스턴의 꿈은 4월처럼 피어나고

잃어버린 인간의 꿈은 깃털처럼 사라진다

 

 

찔레꽃

-준승이 형을 그리워하며

 

하늘로 띄운 그리움 너무 아팠길레

저기 찔레꽃 피웠으리

 

준승이 형이 지상에 꿈 다 두고 갔길레

저기 찔레꽃 피웠으리

 

아프다 아프다 눈물 끝이 가시가 되었으리

중국엔 왜 갔소 성님

그 만리 길 왜 갔오,

그 머언 생의 굴곡질 길을

 

구슬픈 피릿길 외로워도 외면했길레

흰 막걸리로 간을 씻었으리

저기 하얀 찔레꽃 피웠으리

 

가난했거나 장애를 가졌거나

생이 온통 먹빛이었던 인간을 사랑했길레

우리 슬픔 다 합쳐도 모자랄 것이었길레

저기 준숭이 성님

하얀 찔레꽃 피웠으리

 

길-정광훈 의장을 그리워하며

 

굴곡졌던 삶의 행로는 굽은 길에서 끝났다.

경찰 대신 마지막 지상의 삶을 호위했던 궂은 비

젖은 도로는 평생 그의 삶의 옷이었다.

도로는 그의 집!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참 삶이 도로로 나와 시작되었고

감옥은 그의 여행을 위한 쉼터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었다고

그러나 책은 읽을수록 슬픔이 곱절이 되었다고

명상은 아름다우나 명상 끝에 묻어나오는

세상살이는 어두웠으리라

 

마지막 하직 인사는

민중이 덩실덩실 춤추는 혁명의 축제에

그대들을 초대한다던 그 말

지금도 무등산 남동으로 난

사람들의 숲에 남아있을까

 

그가 집을 나와 만든 길을

우리가 걷는다 그가 만든 민중 언어의 숲을

우리가 거닌다 삶을 한의 말로

힘찬 싸움의 구호로 바꿔버린 그 말을

우리가 외친다 민중의 가슴에 박혀 숨어버린

분노의 광맥을 찾아

우리의 슬픔을 퍼올리던 그의 파안대소가

그립다 슬픔을 두드려 만든

그의 촌철살인의 그 말

양심을 따뜻하게 데우던 사랑의 책 나누기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들

그립다 아스팔트 길에서 시작되어

길에서 끝난 그의 삶이

 

리오라는 오래된

가난한 차, 에어백도 없었다던

예뻐하던 후학들과 함께 가난한 집

항상 그의 삶에 비가 왔지

참 궂은 날들이었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겨진 것은

 

목련 나무 앞에서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나도 나무다

겨울 지난 뒤 봄의 환희를 전해준

목련 나무처럼 나도 그 앞에 서있는 나는

꽃나무다

양손에 꽃을 들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 꽃의 이름과 의미와 당신과 관계를

알아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말없는 말을 한다.

주고받는다.

꽃을 아는 자는 꽃을 볼 수 있다.

왼 가지엔 2009개정교육과정 중단의 꽃

오른편 가지엔 차등성과급 폐지의 꽃

6월의 햇볕을 잔뜩 쬐고 있던

목련은 앞에 푸른 손을 들어 날갯짓을 한다.

해마다 맞이해도 봄은 기쁨

환희의 가슴을 열어주었던 목련꽃에

사람들은 눈길을 주었고 자기 삶의 의미를 반추했을 것이다

생의 겨울을 벗어났다는 안도의 숨을

환히 가슴을 열었을 것이다.

무거운 꽃을 들고 있는 나에게

차마 눈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도 한 구석에는 꽃들이 활짝 펴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 작은 마음마음들이 나를 이른 아침에

그들의 출근길 근무하는 청사 입구에 서있게 한다.

아침을 무겁게 만드는 꽃을 들고.

 

 

행운목

 

화분 속에 키우던 행운목은 죽어버렸다

그렇게 사랑했던 행운목이었는데

 

 

물을 열심히 주었다

물에 불려 행운목은 익사했다.

신선한 햇빛과 맑은 바람과 하늘의 물이 필요했다.

 

게단 옆에 세워진 시신 너머 유리창으로

구름 낀 가을 하늘

그 하늘에 열린

이 땅의 사랑받았던 아이들의 얼굴

몇 점

내 마음 속에 아픔 들

 

 

광장은 우리의 미래다

-영광21 창간 9주년에 부쳐

 

우리들의 꿈이 혼신의 힘으로 다가가다

더 나아갈 수 없을 때

잎잎이 지고

불갑산 자락 언덕마다 상사화가 피어난다

가난하나 풍요로운 광장!

영광 21!

지혜로운 자의 칼럼이 예지와 분별의 길을

용기있는 자의 제보가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의 울림이 빛나는 미래를

열어젖힐 일이다, 그리하여

염산에서는 소금으로 부활하고

군남의 들녘에 황금 이삭의 출렁임이 일고

칠산 바다에서는 풍어의 깃발로 돌아올 것이다.

 

영혼의 성지, 풍요의 요람

영광을 일구는 영광 21!

절제된 객관이 펄펄 살아 있는 아고라

부채살처럼 퍼지는 무지갯빛 희망들 모여

거기 영광이 있으라

공무원도 농부도 상인도 꿀벌 키우는 사람도

함께 미래를 디자인하는 곳

가을에는 구절초 꽃으로 노루목 어디쯤 피어나

저 가없이 흩어지는 절망들 어루만지고

겨울에는 혹한과 눈보라를 막아줄

우리들의 따뜻한 정신의 안식처

 

우리가 꿈꾸는 세상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조화로운 세상

만세! 자유 언론, 만세! 독립 신문

이 광장은 연실봉처럼 황홀한 우리의 미래다

 

조준승-

 

그대는 돌아올줄 모르는가
여전히 여기는 또
바람 불고 비오고
고독한 영혼은 쉴 거처 없다네
사랑했다 잃은 달력읗
또 넘기고 있다네흐
쓸쓸함도 유적을 남기고
그리움도 그림자를 남기는
오늘운 제일날!
지상에 백화들이
소리없이도 울먹이는 이날
그대 생각으로 하루가 지나가네
조준승! 슬픈 이름이여

 

 

그대에게

 

그대는 내가 사는 힘

나는 그대로 하여 하루가 있고

저문 하루가 또 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대에게로 달려가는 마음이

나의 하루이고 밤이다

어둠이 오고 고독이 덮쳐와도

그대로 하여 별들이 내 가슴에 뜨고

아침이 빛남을 느낀다

바람이 불고 비가 슬픔으로 와도

울지 않는다 그대로 하여

나는 무지개를 꿈군다

에덴은 그대와 람께 한 공간이며 시간이다

그대와 떨어져 있을 때

나는 우주 밖을 유영하는

떠돌이 별이다

 

흙이 되고 물이 되어

-윤보현 선생님을 추모하며

 

너무 많은 그림들로 채워진

인생의 도화지 앞에서

지울 수도

더 무엇을 그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낮과 밤이 분명한 행복한 날이 있었고

어둠 가운데 우리는 한때

거리를 지키는 등불이었습니다

가로등이 쓸모없는 대낮이 되고

우리가 다만

바닷가 한 귀퉁이

폐선들의 하나로 흉측하게

방파제에 이리저리 떠밀릴 때

우리의 우울은 현존을 뛰어넘어

하아프의 아픈 현을 끌어당겼습니다.

 

술값 15만, 20만

조화 5만

조하 10만

 

우리들의 낡은 연장은 피로로 녹슬고

우리들의 아침은 절망으로 피어났습니다.

우울의 끝모를 깊이로 파고든

슬픔의 옷자락은 찢기고

웃음의 날개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윤보현 선생님

이 가을 국화 꽃 향기 가슴으로 번져올 때

슬픔과 우울이 한낮에 찾아올 때

선생님께서는 우리 곁에서 홀연 사라졌습니다.

 

우리들이 아이들과 씨름하는 교단에서

더 이상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도

들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선생님의 지혜로운 말씀도

들을 수 없습니다.

교단 밖에서 만나

따뜻한 포옹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여기 없고

우리들은 여기 남아 있습니다.

누구도 먼저 슬픔을 나누자 말 못하는

가슴 먹먹함이 우리들을 감싸고 있는데

 

윤보현 선생님!

우리는 고뇌를 섞어 마시던 소주집에서

더 이상 선생님의 노래

‘명태’는 들을 수 없는 것일까요?

 

오오! 그러나 윤보현 선생님!

동해 바다 푸른 바다 밑이

붉은 해로 다 깔리는 저녁이 오기 전에

명태 떼의 빛나는 유영을 보고 싶습니다.

해방의 노래로

힘차게 바다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큰 명태 한 마리!

 

윤보현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계절에 따라 꽃 피어나듯

그리워할 것입니다.

꽃들이 지면 지는대로

우리는 서러워할 것입니다.

윤보현, 우리들의 윤보현 선생님!

먼 강을 건너서 다시 우리 흙이 되고

물이 되고 하늘이 되어 만날 것을 믿습니다

사랑했으므로.

 

2010년 9월

장주섭 드림

 

겨울 꽃

 

어둠을 기다려 피는 꽃은

가로등만은 아니다

아침이 되어 져야 하는 꽃은

가로등만은 아니다

눈이 내리고  대낮이 되었다

불을 켜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우는 대낮이 되었다

먼지와 바람과 휴지가 날리는

우울한 공원 호젓한 길가

불을 켜지 못하고

가로등은 늙어간다

불을 켜지 않아도 될 때

낡은 등은 켜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공원 한 귀퉁이 고사목으로

사라져도 좋을 저녁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태양 볕에 소금이 될 때까지

다시 어둠을 기다려 꽃을 피울 때까지

 

건파스 이후

 

죽음이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다

습지에서 사는

개구리는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

많이 쌓인 항생제 덕에

나는 오래 살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다

아버지는 순명하셨다

양지 바른 언덕에서 하늘을 향해

잠깐 숨을 둘이쉬다가

관보다는 약간 큰

내가 애인과 몰래 자던 방에서

우리집 누렁이가 그늘에서 꿈을 꾸던 한낮

조용히 하늘 나라 기차를 타셨다

 

양계장 

닭고기를 으드득 뜯으면서

양계장의 닭 벼슬들을 생각했다

목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몸부림

닭 가슴살이 흐느낀

 

학생들은

양인장에 들어 있다

머리가 좋은 아이가 있다

머리가 좋지 못한 아이가 있다

의자 불타는 아이가 있다

의지가 약한 아이가 있다

지적 호기심을 즐기는 아이가 있다

지적 호기심보다 감자 생각을 하는 아이가 있다

좀도 부모의 조력을 받는 아이가 있다

조력을 젆셔 못 받는 아이가 있다

놀고 싶은 아이가 있다

공부하고 싶은 아이가 있다.

 

똥과 오줌이 섞인 양인장에

있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아이들은 버텨버린다

자버린다. 딴짓을 한다. 이야기를 한다. 책을 펴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이들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나는 양인장에 있다

미래,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조랑말

 

엽서

 

당신과 내가 만나 행한 일들이며 말들이며 사랑한 것들이 다 모여서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래 당신과 내가 이 우주에서 사라지는 일이 있을까요 죽음도 이 모든 것을 가져갈까요

오직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이 살아남아 세상은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격포 전망대에 올라

바다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오 바람은 유월 새벽처럼 시원하고 새는 숲 사이에서 채석강으로 날고 있다오

등대는 여전히 온자이고 바다는 해안을 끌어당기며 갈매기릉 노래를 듣는다오 애인이여

나는 그대ㅑ 없이도 그대와 함께 있다오 잔잔하여 더 없이 평온한 바다와 같이도 내 마음은 그대와 함께

그대가 바라보는 서쪽과 내가 바라보는 바다가 같다오  영원히 같을 거라오 

 

 

바다4

 

사람들이 이 바다와 와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면

파도가 와서 때리고 때려

이 해안의 모래가 만들어졌으리라

사랑의 조각들이

헤어질수 없는 아픔들이 해안을 떠나지 못하고

모여서 사구미의 모래 사장을 만들었으리라

그리하여 연인들이

이노을진 해안을 찾아와 사랑을 약속하고

 

그 약속으로 신은 생명을 내리고

그 생명있는 것들이 다시 파돛 ㅣ는 이해안으롷 달려와 사랑을 노래하던 것이

저 파도 소리라고 나는 믿는 것이다

바람이 불고 해송밭에 어둠이 내린다

 

사랑할 시간이 오는 소리, 일몰의 때가 한참 지난다

나는 자리를 뜬다

 

 

바다3

 

사랑한다고 외치면

거대한 고래가 그 소리를 삼켜버리고

모래 위에 적어 놓으면

흰 포말일 달려와 지워버린다

그대가 노을에 걸어간 발자욱도

밤이 와서 지워 버린다.

 

나는 마음의 칠밭에

그대를 사랑한다고 쓴드ㅏ

누구도 지우지 못하도록

 

나는 신과 영원을 믿는다

나의 사랑을 지켜줄 신을

해가 바다로 끝모를 깊이로 잠기어간다

서녘바다가 울음을 운다

바다가 갈매기들을 델;고 떠ㅗ난다

그러면 나 사랑의 등불을 켜리가

먼곳으로 걸어갈내 사랑의 발자욱이

설령 세상의 온갖 것에 지워질지라도

내 영혼의 칠판에 새겼으므로

나 그대로 이미 가득히 행복하다

 

 

바다1

 

아침에 바다는 다시 시작하였다

심심해 죽겠다싶다시피

해안을 소가 긴 혀를 내었다 말았다 하듯이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었다.,

물결은 높이와 폭을 달랐지만 항상 그 모양이었다

내지르는 소리가 첨에는 듣기에 퍽 좋았으나

나중에는 그러헤 단조롭기 짝이 없는

 

씹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제도 와서 보앗고 들었고 지루앻다

어제오 와서 보앗고 들옸고 지루했다

오늘도 지루하은 나는 지워질 내 인생의 모래밭에서

신발을 벗고 모래 사장 끝까지 걷고 있는 성디다

그렇다고 바다더러 누구도 보수라 말을 던지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도 저 바다와 같이 일하셧을 것이다.

모래바닥에 내가 마음놓고 뛰어놀도록

 

능소화

 

능담도 더위에 타서

혓바닥을 질질 끄을고

그늘을 찾는다하는

음유월 대낮

 

담장 안에서 능소화

고개를 길게 늘이고

담장 밖으로 귀를 열고 있습니다.

 

그 옛날 임금님이 눈이 어두워 한번 찾았다가는

헛개비 불들에 둘러 싸여서

소화를 잊었다 합니다.

 

한번 맺은 천분 잊지 못하여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음유월 능소화

울음 빛깔이 태양에 그을려

연노을빛 하늘색이라고 합니다.

 

하도나 이뻐서

죄없이 미움받은 동네 능담 한 마리

담장 엿보다 눈에 가싯살 들어서

앉은뱅이 되었다 합니다.

 

지금도 옛 우리네 집 옆 우물집

우물 긷던 소화 누님은

그 전장 나갔던 유월의 그 성님을 기다리고 계실까요

 

음유월 그늘 밖에서

그늘을 그리워하면서

노을빛 울음 한 두레박씩 긷고 계실까요

 

 

이팝나무꽃-고 조준승 동지를 기리며

 

봄날을 깨웠던 산벚꽃 그림자도

이제는 무궁한 대지로 돌아갔습니다.

 

진초록의 산문이 열리고

이팝나무의 하얀 꽃잎들이 피었습니다.

 

육신은 탁했으나 영혼은 맑아

곁에 있으면 도란도란 시냇물처럼

계곡을 흐르던 사람

 

계절이 여러 번 슬픔의 옷을 갈아 입어도

유월이 오면 우리는 당신에게 옵니다.

탁주에 영혼의 아픔을 씼던

허허허 상처를 털고 일어났던,

찔레꽃 향기 고와서 미운 사람

 

자기 몫을 챙길 줄 몰랐던 사람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십자가 버리지 못해도 울 줄을 몰랐던 사람

 

우거진 총검의 숲으로 육신을 던져

세상에 인간의 꽃이 되고자 했던 사람

 

당신은 지금

무성한 여름을 여는 하늘 언덕에

이팝나무의 하이얀 꽃으로 피었습니까 

 

새날을 알리는 숲의 소리는 청청청 푸르른데

태양의 오후는 은빛 소리로 찰랑이는데

조준승, 그대는 여기에 진정 없는 것입니까.

 

그러나 여기에 없는 그대와

여기에 있는 우리가

언젠가 한 강물로 흘러

우주의 한 호흡이 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조준승 동지!

우리들 머리에 이팝나무 꽃 피도록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사람

 

오늘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2010년 6월

장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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