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훌륭한 시인의 훌륭한 시들

김경옥 시인의 우울한 쥐 외 1편

골뫼사니 2020. 5. 30. 07:48

김경옥 시인의 

 

영석이와 나와

 

2교시가 끝난 시간

푸른 하늘이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유리 조각에 튓 햇살이 함부로

난반사하는 교실, 영석이다!

어찌 해볼 수 없다

특수교사도 보조교사도 방법이 없다

속수무책이 해결책으로 불려오고

기다림은 최상책으로 말없이 서성인다

 

쌓이고 쌓이고 쌓인 것의 아래

나뭇잎 실핏줄까지 검게 부서진

부엽의 세월 그 맨 아래

영석이 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몰아닥친 것들 모두 몰려가서

만만한 그 집에 자리를 잡았던 거다

형체도 남지 않은 것들이 폭발하다니, 이제는

아부데나 날아가고 쿨쿨쿨 쏟아진다

뚱뚱한 몸 영석이 속에 영석이는 별로 없고

영석이 아닌 것만 남아 있다

 

내 속에도 많지만 폭발은 없다

민감한 제어장치 심호흡, 걷기,

술마시기, 운동장달리기, 정신승리법을 펼치지만

목젖 밑으로는 칼춤의 지옥도가 여러 장이다

흰 가운 입은 의사들은 발견할 수 없다.

찾을 수도 없으니 영석이와 나는 누가 더 중한 것인가

위험 표지판 옆에 붙어 있는 안전제일 표지판

위험에 기식되는 게 안전한가

안전에 포장되는 게 위험한가

병명에 올리지도 못하는, 그래

문제 삼지도 못하는 분출장애

 

나는 자주 영석이가 부럽다

 

 

 

우울한 쥐

 

물 채운 욕조에 쥐를 넣는다

 

부르르 모터 도는 소리도 없이

너는 허우적이며 손발을 젓는다

하얀 털이 젖고, 앙다문 이빨 사이로 물은 들어오고

벌컥벌컥 목을 넘어간다

분홍 손가락이 다급하게 몸기계를 돌린다

 

사각 벼랑

한 뼘인데

몇 바퀴를 돌아도

힘 모아 뒷발 디딜 데 없네

목숨이 잡고 오를 스크레치 하난도

곁을 내주지 않네

나아가도 돌아가도

희망 없는 망망대해

올라갈 수 없네

솟을 수 없네

 

실험 엿새째

허우적임을 멈춘다

속 단풍 벌겋게 타던 쏘시개 불 그만 끈다

하얀 연기 한 올 피어올랐던가

앨법 사진들 한 장 한 장 삭제한다

기억들 뭉텅이로 사라진다

달력이 시계가 잡동사니들이 더미로 쓸려간다

멈춘다 지운다 피한다

돌아보지 않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방식'

물에 잠긴 시간만이 흘러가는

이것이 내 삶이다

눈물은 없다

 

마침내 우울한 쥐가 완성되었다

 

여기저기서 우울한 쥐들이

하얀 약을 갉아 먹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