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훌륭한 시인의 훌륭한 시들

땅끝 문학 지에 초대 시들

골뫼사니 2019. 5. 30. 12:20

판화 김종숙


  밤바다에서 찬물 끼얹는 소리를 듣습니다 한기 돋는 소리 두껍고 둔탁한 소리를 간유리창 너머로 들었습니다.

  큰애야, 등 좀 밀어봐라

  문풍지가 우는 밤, 칠흑 어둠 속에서 돌덩이처럼 굳어진 몸에 찬물을 끼얹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아,

  나는 낡은 허리띠를 졸라맨 아버지의 딸

  아버지 허리춤에 붙은 나도 따라 빈 도시락 소리가 울려, 기다리는 것은 바람뿐이어서  목숨이란 다 무엇인가

  의심이 들 때,

  세상에 아버지라는 이름이 보여

  내가 숨어버리면 또 한 전체가 무너질까

  내게 부는 바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기다려주자 쫌만 더 나를 기다려주자

  숨 멈추고 다독일 때



  바람벽의 내 아버지는 그날의 칠흑 고무판화 한 장씩 걸어두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폐사지에서

-박미경


빛이 나무를 흔들었다/커다란 초록 동굴을 만든 나무 아래에서/키가 훌쩍 큰 스님 한 분이 대빗질 소리를 낸다/이곳은 절이 아니에요/눈웃음이 곱고 피부가 단정한 스님이다/그 절로 가려면 이곳으로 가야 하나요?/나는 눈이 깊은 스님에게 예전에 쓴 노란 표지의 시집을 건넷다. 글을 쓰는 일이 수행하는 일이지요 사는 일이 다 수행하는 일이지요 수월할 일이 뭐가 있겠나요? 스님은 잠시 키가 큰 빗자루를 내려놓고 두 손 모아 합장한다 나도 따라 합장했다 고요가 깊어갔다 들리던 ㅗㄴ래가 문득 궁금했고 목탁소리도 불경소리도 음악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ㄱ4ㅏㅌ이 간다고 같ㅋ이 먹는게 아니야 웅웅울 두고 오 한 이기적인 목소리가 낭창낭창 폐사지 뒤란 대숲에서 들려왔따.


희망온도 -김경옥

사무실 난방기 버튼을 누른다

네발로 선 짐승의 식도 아래로

녹물이 흘러가는지 쪼르륵 소리 들린다

꼿꼿이 서서 손등만 젖혀 세우듯

너는 고개 들지 않고 눈꺼풀만 올린다

모닝커피 입냄새를 풍기며 우-웅

더운 바람을 불어낸다

'희망온도 23도' 계기판에 불이 켜진다

누군가 여러 날 전에 설정한 온도

냉기에서 시작해 20도 근방에서나 맴돌 뿐

다시 희망을 세워봐도

온도는 쉬이 오르지 않는다

틈을 찾아서 벽과 천장을 투과해

쉼없이 빠져나가는 것ㄴ 희망인가 온기인가

아이 입에 물린 체온계

막대 눈금을 가늠하던 날도

희망은 체온이었다.

쉬 내리지도 않아 ㅇ온도는

쉬오르지도 않아 늘 제자리다

지지부진 희망은, 진부령쯤에 퍼질러 앉곤 했다

펄럭임보다 희방은'

깃ㅂ라대를 부여잡은 땀 찬 손바닥에

전해지더 ㄴ온기 같은 것

체온으로나 조금씩 자리 잡는 것인가


종이컵이 전하는 온기에 손이 따뜻해진다.


마음에 반대하여-김경옥


췌장 아래 쯤 어두운 구석

따닥 따다닥? 합선의 불꽃이 인


무엇이 끊어지는 자세다 


 보고 싶다 


이 말은 자주 제 집을 떠나

마음이나 생각기숙사에 갇혀 지낸다


보고 싶아


저린 부위는 잘 잡히지 않는데

이 아이 어려서부터 헛생각하고 같은 동네서 자랐다고

불시에 찾아 왔다 말없이 그낭 가는

바람하고나 이웃했다 한다.

선사께선 가랑잎 타는 연기보다 가벼우니, 걱정마라

내려만 놓으면  쉬이 날아갈 거다

그림자에 묶여 살지 말라 했지만

보고 싶어 죽겠는데


통증보다 강렬한 감각은 없고

고통보다 무섭고 힘센 놈은 없다

눈 뜨면 일어나는 통증, 이 감각은

자동기술기법까지 익해

혼자서 눈물을 흘리고

오목뼈를 단단하게 누르는

돌덩이보다 무거운 실재다




기숙사 책상 필통위에 칼금 새겨진 글씨

거기 앉은 먼지를 털며 더욱 선명해진

너를 물체주머니*에 넣는다


*레닌은 물질을 '감각할 수 있는 실재'라고 규정했다.


전기톱-김경옥


국물이 진하다 뼈다귀 해장국

시래기 몇 올 제치고

뼈다귀 사이에 붙은 살점을 젓가락으로 발라 먹는다

전기톱이 수직으로 지난 자리

상형문자 단면에 자꾸 젓가락이 걸린다


허리는 몸을 세워주는 기동이다

허리뼈가 무너지면 아래로 흘러

바닥에 눌러 붙은 치즈처럼'

살덩이 몸은 주저앉는다, 거꾸로다

도륙으 현장에선 머리를 잘라내고

갈고리에 걸어 양동이에 피를 받고'간 지라 염통 창자 내장을 끄집어낸다

족발을 잘라내고 쉽게 앞 위 다리뼈를 발라낸다

부위별로 살코기를 베어내고 나면

생을 지탱하던 등뼈만 남는다.


장판-김경옥


엄마는 검지 손가락으롤 바닥만 꾹꾹 누르며

말없이 고개 속여 아래만 내려보았다

목소리 크고 말 많은 큰 엄마들

자랑과 힐나 간 치듯 던질 때

눈 돌 데 옵 찾는 우리 엄마는

고개 숙여 방바닥만 내려보았다

난 어려서부터 말 수 적은 아이로 자랐다

한 평생 엄마의 묵묵한 눈길 다 받아낸

비에 젖은 노란 얼굴이 오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