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부다가야 가는 길에서

골뫼사니 2024. 10. 10. 19:31

부다가야 가는 길에서
 
 바라나시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여 부다가야로 가고 있었다. 용변을 보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휴게소에서  순례자들이 내렸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나오던 순간 나는 태양을 보았다. 보았다기보다는 보였다  아니  느꼈다가 더 적절할까. 태양을 보는 순간 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희열감을 느꼈다. 태양이 지구의 모든 생명을 생성시키고 소멸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마치 처음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몸이 느끼고 정신은 전율했다.
힌두스탄 대평원은 한없이 펼쳐지는 평평한 땅, 가도 가도 지평선인, 그 드넓은 대륙이었다. 대평원 위로 웅장하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불덩이가 동글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죽은 나뭇가지 위에 작은 새 한 마리 앉아있다가 태양의 실루엣 안으로 들어갔다 솟아오르는 저 태양이 모든 생명을 잉태케 했다. 태양을 숭배하였던 먼 조상의 마음을 실감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감동했다. 그리고 나무며 풀이며, 강이며 산이며 대지며 이 모든 것들을 신령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인도인들, 먼 옛 조상들의 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느낌을 가리켜 영성이라 하지 않을까?  장엄한 이 순간 나는 영성의 극치 속에 존재했다. 이런 느낌을 영성 체험이라 해야 할까? 아직은 영성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모른다. 태양으로부터 대지에 이르는 모든 자연으로부터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꼈다.
나는 겸허한 자세로 마치 어떤 글 속에서 읽어 상상해온 성자처럼 곧은 자세로 태양을 향해 서 있었다.
 나는 마음의 울림을 몸으로 받으면서 곧은 자세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이런 것을 개달음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커다란 희열 속에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 사람들에게 나의 행위가 보여짐으로써 내 스스로가 마음의 불편을 갖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나는 아무 일 없는 것인양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생각은 또 이어져 나무에도 풀에도 새에게도 다 신령이 깃든 것처럼 생각하였다.
만물은 다 신이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인도에 있는 동안에는.
예전에는 못 느끼고 이제 인도에 와 참 옛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있다. 과학과 합리성의 습기로  성을 쌓고 있던 내 인식의 틀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매우 원래의, 보수성이 어쩌면 모든 습기에서 벗어난 참 나로 돌아온 것 같았다.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다.
안다와 모른다의 혼동, 그 아날로그에서 혼동 혼몽의 상태에서 몰라도 될 것을 이제는 알려하지 않는 상태, 안다와 모른다의 소실점에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