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최후의 제자 수바드라의 경우
수바드라는 부처님을 만나고자 했으나 부처님의 제자들이 이를 제지했다. 그것을 알고 부처님은 수바드라의 친견을 받았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설했다. 그는 120세에 8정도를 듣고 게를 받았다
( ① 정견:올바른 이해로서,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사성제로 설해지는 불교적 진리관을 확신하는 것이다. ② 정사유:정견에 따라 철저히 실천하겠다는 각오이다. ③ 정어:거짓말, 중상하는 말, 모욕하는 말 따위를 삼가하는 것이다. ④ 정업:생명을 해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부정한 성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⑤ 정명:불교의 가르침에 부응하지 않는 직업은 택하지 않는 것이다. ⑥ 정정진:나쁜 마음가짐을 피하고 바른 마음가짐을 계발하는 것, ⑦ 정념:신체와 감정과 사고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이다. ⑧ 정정:바르게 집중하여 명상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 사람이 나의 마지막에 깨달음을 얻은 외도 수바드라로구나
-내 생각하기에, 8정도는 부처님께서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정리해 놓은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깨달음이란 정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출라판타카의 경우
출라판타카은 스스로 바보라 여겼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업신여김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출라판타카를 불러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ㅡ부처님의 물음
마당을 쓸고 방을 닦는 일을 할 수 있느냐?
눈물을 닦으며 끄덕이자
부처님께서는
너는 앞으로 마당을 쓸고 방을 닦으며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라고 외거라.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출라판타카를 보면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라고 얘기해주도록
그러자 글귀를 외울 수 있었고. 먼지를 털고 업장을 없애면 본래의 불성을 찾듯이.
그는 바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처지와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느냐, 항상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나는 이 설법과 당시 부처님의 말씀에 순응하여 크게 깨달은 출라판타카의 일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나 역시 출라판타카와 같이, 약간의 재능은 있지만 내가 이루려는 것에는 미달하기에, 재능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라훌라의 깨달음
밀행제일 라훌라
물을 떠 오자 부처님 발을 씻기도록 하고는 그 물을 라훌라에게 마시라고 했다. 라울라가 이 더러운 물을 어떻게 마시냐고 하니까 부처님이 그렇다 물은 본래 깨끗했지만 발을 씻으므로 더러워져서 아무도 먹지 않으려고 하지 않느냐? 그것처럼 우리 마음은 본래 청정하지만 거짓말하고 살생하면 더러워져서 아무도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부처님은 이 물을 버리라고 하고는 이 대야에다가 공양을 받아먹으라고 하였다. 라울라가 이 더러운 대야에 어떻게 공양은 받아먹느냐고 하니까 부처님이 더러운 대야는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대야가 새것 일 때는 깨끗하다고 좋아하지만 더러운 것을 담으면 그 대야도 더럽다고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것처럼 마음이 악행을 행하게 되면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이 법문을 듣고 라훌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수행을 해서 부처님의10대 제자가 되었다. 그가 바로 밀행 제일 라훌라 존자다.
-라훌라는 부처님의 아들이다. 라훌라가 태어날 때 "장애"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라훌라는 선행을 해도 드러내지 않아 밀행 제일로 불리웠다. 부처님은 설법의 방법으로 꾸짖음이었다.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명징한 비유로 라훌라의 정신을 자극하였다. 꾸짖음과 무안을 받아들이는 라훌라의 성정 또한 놀라웠다. 이에 나는 나보다 더 아는, 깨달은 현인으로부터 질책과 비판을 겸허하게 받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루벨라 가섭의 경우
부처님이 돌아온 것을 본 우르벨라 가섭은 오늘 굉장한 행사를 했는데 그대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말이야. 아니 부처님이 당신이 오늘 아침에 내가 여기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말씀하셨다. 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이다. 그러면서 일체의 세상만사를 다 변화시킬 수 있는 신통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에 나라고 하는 상이 있고 욕심이 있으면 질투심이 생긴다. 이것이 모든 고통의 근본이요라고 하였다. 우루벨라 가섭은 신통이 자유자재해도 지금까지 자기 번뇌의 뿌리를 못 봤는데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번뇌의 뿌리를 확연히 보게 되었다. 해탈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가섭은 부처님에게 절을 하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우루벨라 가섭은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마음을 읽는 힘, 신통력에 의한 교화, 아닐 것이다. 당대의 문화의 습을 혁신하려는 정신과 구태를 반복하려는 정신의 부딪힘에서 부처님의 새로운 정신을 우루벨라 가섭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깨우침은 이처럼 새로운 정신의 구현으로부터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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