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교 공부

골뫼사니 2024. 10. 3. 15:13

덩어리가 가득찬 가죽주머니에 불과한 자들이여!

연기ㅡ의존하여 같이 일어난다

연하여
patt

老死-->生 ->有 ->取->愛->受->觸->六處->名色->識->行->無明

각각을 법이라 한다면
모든 법은 항구적이고 독립적인 자기 (atman)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諸法無我이다.
ㅡ 즉 제법무아는 연기적 사유에서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멍제이다.
유전연기 流轉緣起 ㅡ 고뇌가 발생하는 연기
환멸연기 ㅡ 還滅연기란 고뇌가 소멸하는 연기

一切皆苦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다

고를 일으키는 집이 있다

流轉緣起  고는 고통의 현실 집은 고통의 원인

還滅緣起  멸은 고통의 소멸 도는 소멸의 방법

사성제 고집멸도
팔정도

연기론을 쉽게 풀이한 것이 사성제이고, 사성제의 결론은 팔정도로 요약되는 것이다.
매우 윤리적인 지침

정견 ㅡ바르게 보다 무지에서 벗어남
우주와 인생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춘 것
정사유ㅡ바른 사유의 밥칙에 따라 생각하는 것 
정어ㅡ올바른 언어적 행위
정업ㅡ올바른 행위
정명ㅡ올바른 생활  생활 명자이다.
정정진ㅡ올바른 노력 
ㅡ방일치 말고 정진하여라 ㅡ열반  중 최후의 말 평생 노력해왔다ㅡ
정념ㅡ바른 기억
정정ㅡ올바른 정신 집중

12연기  사성제 팔정도

팔정도가 계정혜 삼학이다.

계ㅡ정어, 정업, 정명,
정ㅡ정념, 정정
혜ㅡ정견, 정사유
정정진은 계정혜의 공통된 미덕이다.

계율 ㅡ 인간의 건강과 관련된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다.공부 쿵후  즉 신체의 단련

정 ㅡ 정신통일 삼매ㅡ의식의 집중 ㅡ정신집중

혜ㅡ지혜  앎이다 지식이다.

지ㅡ핼스
정ㅡattention
혜ㅡ지식.


우리는 깨달음을 기다리는 존재다. 깨달음은 기쁨이기때문이다.

지눌 선사는
깨달음(悟)으로부터 진정한 닦음(修)이 시작된다. 깨달음이 선행치 않는 닦음은 번뇌의 연속일 뿐이다.


깨달음을 항상 닼아야한다면 그 깨달음은 참된 깨달음이 아니다.

무아행 은  자비이다.

지눌의 점수는 자비를 위한 것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이라는 대승불교의 수행법으로 보살이 행해야 할 수행법인 
육바라밀이 있다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보시 바라밀은====보시는 무주상보시( 無住相布施 -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다.

내가 베풀었다는 의식은 집착만을 남기게 되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상태에까지 이끌 수 있는 보시가 될 수 없는 것이므로, 허공처럼 맑은 마음으로 보시하는 무주상보시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

 

보시는 무주상보시여야 한다. -

재시(財施)·- 자비심으로서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주는 것이고
법시(法施)·- 다른 사람에게 부처의 법을 말하여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는 것이며

무외시(無畏施) - 무외시는 스스로 계를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는 것이다.

 

지계 바라밀은-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인욕바라밀은

모욕과 번뇌를 참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안주하는 것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인 성나고 언짢은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첫째 복인(伏忍):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만 참아서는 안 되며,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 유순인(柔順忍): 사람이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이 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셋째 무생인(無生忍):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이다.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一切萬法)이 인연으로 모였다가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넷째 적멸인(寂滅忍): 이것은 부처의 지위에 있어서의 인욕행이다. 생사고해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의 경지에 서서 볼 때 한 물건도 없는 경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인욕행을 닦음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는 곳에 참된 인욕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진바라밀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첫째는 몸과 입으로써 부지런히 착한 일을 닦고 배우며 실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뜻을 항상 진리에 머무르게 하여 모든 생각이 착한 진리를 떠나지 않게 정진하는 것이다.

사정진(事精進): 세간사와 출세간사를 막론하고 그것을 한번 이루려고 결심하였으면 그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

이정진(理精進): 악한 생각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여러 사람이 이롭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거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기어이 성취하도록 노력, 정진하는 것

 

선정바라밀

수행인이 반야의 지혜를 얻고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며, 생각을 쉬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생활이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는 까닭은 잡다한 생각을 쉬지 못하고 어리석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공부로서 망념과 사념과 허영심과 분별심을 버리게 한다.

 

반야(지혜)바라밀

지혜라고 번역한다.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밝게 꿰뚫어보는 깊은 슬기로서, 지식과 다른 점은 지식이 분별지(分別智)인 데 반하여 지혜는 무분별지이다. 보살이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는 육바라밀 중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의 어머니라 하며, 다른 5바라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반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① 문자반야(文字般若)는 부처님이 설한 경(經)·율(律)·논(論)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고,

② 관조반야(觀照般若)는 경·율·논의 문자반야를 통하여 진리를 알아내고 진리에 의하여 수행하는 것이며,

③ 실상반야(實相般若)는 부처가 체득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 지금까지 정리한 내용의 결어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생하고 행해지는가를 연기법(12연기)을 통해서 깨닫고

-8정도를 통해 생각과 행동과 말과 삶을 살아가면서

-육바라밀을 실천한다면

보살의 삶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