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지 않는 발걸음이라 무거웠다. 선배는 외지에서 오는 자신의 모임에 우리에게 저녁 식사비를 대라 하였고, 동시에 우리 모임에는 자기가 식사비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임은 모두가 경비를 거출하여 쓰는 것이기때문에 내가 혹은 후배가 식사비를 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배는 쉽게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고 후배는 이에 대해 전화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엇다. 그런 모임에 후배는 가지 못하지만, 내가 전화를 받았고 또 내가 선배와 더 오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오늘 오전이었는데 배터리가 꺼진 휴대전화를 식당에서 충전하고 켜니 문자가 와 있었다. 선배였다. 식사비 내는 것에 대해서 말씀이 없으셨고 다만 오늘 저녁 식사 때 오라는 취지의 말씀이셨다. 아내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했을 터라, 아내는 옆에서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서울서 내려오는 팀이 오후 2시 30분에 K역에서 이 지역 팀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협찬금이라도 내려면 현금이 있어야겠기에 시간이 좀 남아서 아파트 앞 조성된 공원을 지나 농협으로 가려니 하고 길을 나서는데 공원입구에서 조카 규를 만낫다. 조카는 소방직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였는데 이번 해에도 합격하지 못햇다. 못내 가족들이 서운해 했고, 한편으로는 돈을 벌어야 할 32살이어서 이제 공부는 그만하고 취직했으면 하는 생각이 더 많앗다. 그러나 문제는 본인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어서 무러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카에 대한 책임은 늘 내게 부채의식처럼 잇어서 조카들 둘은 마음의 괴로움이었다. 말 못하는 큰 형님과 형수, 그 큰 형님이 브록 공장에서 번 돈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런 조카들이 학교 공부을 충실히 하고 남들처럼 일없이 졸업하고 취직했으면 종ㅎ으련만 그렇지 못하였기에 32, 31 이 나이 되도록 둘째 녀석은 군대 가기 전에 놀다가 군대 갔다와서는 한 육개월간 집 근처에 사우나에서 잡일을 하는 일로 일하다고 내내 빈둥빈둥. 피시방에서 아르ㅂ이트드 하고 할머니나 ,내게 용통을 주라 하던지 하여 하여튼 괴로움의 ..였다.
이번 시험에도 떨어진 모양이었고 제 할머니는 내게 시험에 대해 말하지 말라도 얘기했다. 나도 역시 시험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엇다. 먼제 큰 조카가 말을 걸어왔다. 20일간 일해 모은 100만원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 이번 시험은 시험 체제가 바뀌어 떨어졌다. 나는 더 열심히 해라 , 이런 말도, 또는 저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둘은 잠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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