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은 양심을 일깨우는 죽비 소리/어떤 생각

부러움에 대하여

골뫼사니 2019. 12. 4. 06:27

부러움에 대하여


2019년 12월 3일 저녁 아내의 비판에 대하여


무슨 일로 아내의 화가 치밀어 올랐지? 나의 어리석음의 발로였지. 그것은 호봉과 연금 사이의 관련에서였지, 나는 상대적으로 또래의 남성 교사보다 호봉이 낮다고 아내에게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여러 번 말한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말하는 내면에서는 내 또래의 남성교사의 호봉 높음을 부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 부러움으로 인해 나는 자주 나는 군대 경력도 사대 경력도 없어 호봉이 낮다.라는 말을 자주 했을 것이다. 확실하다는 말은 이렇게 내면이나 정신, 마음의 일에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나에게 부러움의 마음이 생겨나 존재했을 것이다. 확실하게. 이런 말을 하는 마움 속 깊이에는 욕심이 발돋움 했을 것이다. 나는 욕심이 많은 것이다.-이것이 아내의 판단이다. 아내는 내게 당신은 군대도 안가고 그동안 편안했다. 남들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 않느냐? 그런데 왜 그것을 부러워하느냐. 그것은 욕심이다. (맞는 말이네.) 나는 사대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래의 남성 교사보다 호봉이 낮다. 그런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나는 사대를 졸업한 호봉높은 교사를 부러워한다. 이것은 욕심이다. 자신이 사대를 못 가서 그리 된 것을 후에야 부러워하는 것은 욕심이다. 이런 생각은 아내의 판단이다. 아내가 나에게 가하는 대한 힐난이며 질책이다. 무슨 사람이 그래? 하는 보편적 인간의 자세가 아니라는 투의 말이다. 그런데 나는 2년이나 늦게 대학에 입학했고 또 1년을 휴학했다. 그래서 나는 또래의 남성 교사보다 호봉이 매우 낮다고 생각해왔다. 말하여 바뀔 수도 없는 것을 나는 여러 번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몇 호봉이나 낮을까 그것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자주 말한다는 것은 부뤄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욕심이다.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그렇게 욕심이 많냐? 이말은 대답을 어렵게 하는 말이다. 나는 부뤄한 것이 많다.

아내는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다는 친구 얘기를 자신에게 내가 자주했다고 말한다. 그랬다. 나는 친구가 주식해서 돈을 많이 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을 부뤄했다. (나는 그 돈이 있으면 큰 형, 작은 형, 몽규, 재학의 살길을 도모할 수 있도록 줄 수 있고  그리고 어머니의 병도 고칠 수가 있기 때문에 한 20억쯤이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무한의 욕심이다. 그렇다 나는 욕심이 많다. ), 그런데 아내는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직접 피붙이 중에 그렇게 아마도 절실하게 돈을 줘서 도와야 할 사람이 있을까 당연하다 아내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아내는 부러하지 않는 것이다.(내 생각이지만) -그런데 이말은 틀린 말이다. 아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시어머니가 단 한번도 옷을 사준 적도 밥을 사준 적도 명절 봉투르 준 적도 여행 경비를 대준 적도 없다. 그러나 아내는 단 한번도 그것을 입 밖에 내 보낸 적이 없다. 아내는 큰 형의 부인인 형님에게서 따뜻한 환대 한 번 받은 적 없다. 역으로 형님에게 반지였던가 목걸이였던가를 선물로 드렸다. 형에게서 조카 몽규나 재학에게서 -아내는 그런 면에서 대인이다.

나는 또 언젠가 기아자동차에 다니는 친구가 연봉7천 팔천 얘기를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면 아내는 가만히 있다가 하도 여러 번 그얘기를 들으면 당신이 야근을 하고 특근을 하고 그랫느냐, 어리석은 것이다.(내 말인데) 그런데 실제로 내 연봉도 보충 수업 자율학습 감독 하고 그롤 때는 7,8천 아닌가? 그 부러움은 욕심이다 당신은 욕심이 많은 것이다. 그래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인정하면 될 것 아닌가(내 생각) 그런데 욕심이 많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내가 이중적인 인간이라고 모멸하는 것이다. 나는 모멸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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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가 지능이 낮고 마을에서 천하게 대우당하는 것을 봐오면서 자랏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함부로 대하고 어른이 된 아버지를 오째 장센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하긴 육봉이 장센이란 말도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 보다 어린 사람들이 뭔가 하시하는 말투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 차이는 20세 나는 바보이 지능 낮은 아버지가 싫었다. 그냥 보통인 아버지, 집안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적당히 존재하는 그런 존재로서의 아버지를 부러워 했다.

나는 큰 형이 벙어리 농아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6살 차이나는 형이다. 둘째 형은 3살 차이인데 지능이 낮고 아둔한 사람이다. 형은 아이들과 놀거나 싸움을 한다. 나는 내 문제로 싸우는 일보다 형이 내 또래 아이들과 싸움에 끼어들어 싸움을 했던 기억이 3번이나 난다. 윤 영근네와 싸운 것도, 경출이와 싸운 것도, 형이 길동이 머리를 돌을 던져 깻던 것도 다 내겐 괴로움이어었다. 내가 싸울 대 조용히 서서 그 권위로 뒷배가 되는 그런 평범한 형들이 있었으면 했다. 나는 그런 부뤔이 있었다. (가만 있자 이것이 욕심의 문제일까?) 결핍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나는 아내는 오빠도 남동생도 언니도 여동생도 없다 그런 점에서 아내는 결핍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있어도 나처럼 내가 오히려 도와야 하는 그래서 형제인 것이 어쩌면 부끄럽기도 하는 형들이 있다는 것은 아픈 것 아니었을까?


나는 열세살까지 집이 없엇다. 우리가 사는 집이 없었다 어린 나는 개를 좋아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그런데 나는 개를 키울 수 없엇다. 집이 없었기 때문에 아 세들어 사는 모든 어린이들도 다 그랬겠구나. 집은 늘 부끄러웠다. 방 한칸 부엌 반 칸 큰집 땅 반, 마을 우물터 반을 차지한 초가 오두막 집 그 집은 항상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래서 집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나는 허영기가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외제차 몰고 다니는 것을 부뤄했다. 못 타는 상황에서 그 외제차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흉보고 뭘 흉을 볼까?

그래 두번이나 외제 중고차를 사려고 그것도 공짜 공껏 힘껏 일하여 얻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거지 근성을 가지고 안양을 갔다. 그것도 이런 행위를 멸시하고 증오까지 하는 아내를 데리고 아내는 얼마나 복창이 터졌을까ㅓ 아아 이해가 된네.

힘들이지 않고 얻으려는 거지 근성이 내게 있는 것이다.

우와 그래

나는 아내와 결혼하지 않아야 했다. 나는 횡재를 했다 내 욕심을 버렸어야 했구나.

그런데도 나는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와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나는 넓은 집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좁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영리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일고나 서울대 졸업한 사람들과 가까이 (꼭 일불허 그런 것ㅇ는 아니지만)지낸다. 그것은 욕심의 변증일까. 나는 일고을 떨어지니 사람이다. 그래서 더 결핍을 느끼고 그런데 뭔가 컴플렉스는 아니지? 나는 유시민의 지식과 그 운용에 따른 말 잘하는 것으 부러워한다.

세상에 존경받는 살맘을 부러하는 것이다.


나는 육체적으로 강건한 사람을 부뤄ㅓ하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허얏ㄱ했기 대문에

나는 운동잘하는 사람을 부러한다. 운동신경이 좋이 않아 테니스도 못하고

나는 노래ㅑ 잘부른 사람을 부러하낟,


나는 부러하는 것이 맣은 사람이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해야 환다.


나는 성인이 아니다. 도덕적 인간이 아니다. 나는 그래서 허위 의식 속에 살아왔을 수 있다.


일단  나는 한번도 아내의 자의식, 자아를 향해 비판의 비난의 언어를 날린 적이 없다-사실일까?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자 그렇다 한번도 없다 말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버지의 성격을 닮았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말했다. 장인어른의 성격? 뭐라고 적지?


나는 내 자아, 생각을 비판받으면 그것을 못 참는다-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한발 더 깊이 들어와 비판, 비난한다  나는 나의 잘못된 판단이나 생각을 비판받으면 긍정할 줄, 인정할 줄 모른다-아내는 이렇게 내게 말한다/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와 말로 내 마음을 판단하지 마라. 나는 내 마음을 당신이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도덕일까? 내가 설령 내 본성이 욕심 많은 본성이 드러낫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욕심 많은 인간이 아니기를 또 한편 다른 사람에게 욕심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위선인가?(지금 생각) 그럴 때 내 속 마음을 당신은 나 아닌 당신 타인은 지켜주라는 것은 아닌데 침범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것이 아내에게 향하는 내 메시지였다.

나는 아내를 비판한 적이 있었던가-나는 기억나지 않는다(어쩌면 비난, 비판받을 일을 말을 행위를 안했을지도 모른다(기억나지 않는다), 아내는 어리석지 않음이다. 보편적 인격체로서 아내는 존재하고 나는 어느 부분에서인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생각과 행동과 말이 삐걱거리는 때가 많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말에서 행위에서 행동에서 보편적 인식에 부합되지 않은지? 여기서 내 정신은 판단이 어렵다 언제까지 남에게 묻거나 남이 알려준 지식과 지혜를 듣고 살아야 할까 괴로운 일이군 그런데 왜 생각이 이렇게 다른 길로 가버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