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니체라는 철학가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 들었던 그의 유명한 말이다. 그 당시에는 이 말이 단지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 이 말이 의미하는 뜻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에 이상한 이름의 제목에 호기심을 가지기도 해보았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난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위대한 철학가의 저서라는 것이 첫 장을 넘기는 데 커다란 벽이 되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의 주관과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까', '오히려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들이 앞섰다. 그러나 제1부를 몇 번 읽어가면서 그런 걱정들은 점차 사라지고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말은 종교개혁도 끝나고 과학의 발달과 그로 인한 산업혁명으로 신의 위치는 점점 좁아만 가는 시대였다. 그리고 철학 역시 그 시대에 맞는 실존주의 철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는 조그마한 마을의 루터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가치관 아래에서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하기 전까지 니체는 단지 고독을 사랑하는 온순한 청년, 그리고 목사로서의 길과 철학자로서의 길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이었다. 본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동시에 공부하던 그가 과감히 신학을 버리고 고전문헌학으로 돌아설 수 있었던 데에는, 포타에게 받은 고전교육의 영향, 니체 자신의 고대에 대한 사랑, 문헌학자 리첼 교수에 대한 존경과 그의 권유, 신학에 대한 반감 등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기독교를 떠나 기독교를 가장 신랄하게 공격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 등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실존주의와 생철학을 받아 들였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창조하였다. 철학자들을 만나고 배우면서 느꼈던 것을 그리고 자신의 살면서 느꼈던 것과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서 자라난 기독교의 것들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쓴 것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의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창시자 조로 아스터를 본뜬 이름이다. 이는 유럽 문화에의 반감과 더불어 동양사 상과 생활, 잠언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짜라투스트라와 조로아스터교는 상관 관계가 없다. 짜라투스트라는 니체의 유일한 벗인 동시에 그 자신이다. 문학과 음 악, 산책으로 소일하며 늘 외로웠던 니체는 그만큼 깊은 우정을 늘 동경했다.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는 냉철한 사고와 예리한 감수성, 성스러움을 겸비한 인물이다. 니체는 인생 행로에서 훌륭한 벗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깊은 우정을 표명했지만 완전한 친구라 믿던 그들에게서 실망을 느낀 나머지 이상적인 벗으로서 짜라투스트라를 창조해냈다. 그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자신의 우정과 이상, 환희, 환멸, 고뇌 등 내적 경험의 역사를 털어놓으며 이상향을 담아냈다.
언어의 음악성과 시적 특성을 지녀 한 편의 서사시와도 같은 「짜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총4부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제1부는 1883년 2월 3일부터 13일까지의 10일간에 완성되었고, 1883년 6월 초 슈마이츠너 서점에서 출판되었다. 제1부의 처음에는 '짜라투스트라의 서설'이 나온다. 이 부분은 완전한 도입부로써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신의 죽음 이후, 그리고 모든 철학적 체계의 좌절 이후 개인적인 입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몰락의 결심과 은둔자의 대화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해준다. 그리고 군중을 향한 연설의 세 등분된 형식을 통해서 논제적인 도입이 시작된다. 군중 앞에서의 설교의 좌절과 동반자를 찾으려는 결심은, 이 책이 새로운 신앙의 교리 문답서가 아니라 자율적인 태도를 향한 외침으로 읽혀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본문은 '모든 이를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이 어떤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
서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30세 때 고향을 떠나 산중에서 10년 동안 지낸 짜라투스트라는 어느 날 아침 문득 깨달은 가르침을 인간세계에 계시하기로 결심한다. 산에서 내려오던 도중에 한 늙은이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지만 '신이 죽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그 늙은이와 얼른 작별하고 만다. 허상에 불과한 마지막 믿음이나마 빼앗지 않기 위해서다. 짜라투스트라는 한 장터에서 줄타기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에 게 ‘초인’을 가르쳐주지만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자 창조력이 있는 친구를 찾아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 순간 독수리와 뱀이 옆으로 다가온다. 짜라투스트라는 뱀처럼 영리하고 독수리처럼 긍지를 가진 행동에 나서리라 다짐한다.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짜라투스트라의 연설'이 시작된다. 짜라투스트라는 주로 얼룩소라는 이름의 도시에서 초인의 이상을 설교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해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짜라투스트라의 첫 연설<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는 입문적인 지시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는 앞으로 이어지는 연설의 정신과 짜라투스트라에 있어서의 사유와 철학의 방법이 암시되고 있다. 또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해방의 자유 정신이 되는, 하나의 변화가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외경심을 품은 자들이 해방의 자유 정신이 되고 "창조자의 유희"를 긍정하는 유희의 자유 정신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비판에서 실험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다.
여기서는 현실에 대한 구속성과 통상적인 생각들의 풍자화가 그려지고, 그 안에서 부분적으로 구체적인 새로운 가치 규정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덕성, 정열, 가식과 몸에 대한 적대성 범죄, 전쟁, 국가, 순결, 우정, 이웃애, 남녀 관계와 교육, 자유, 죽음에 대한 지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일상적인 것과 삶의 여러 다른 영역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된다. 당시대적인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의무들에 대한 의문이 또한 제기된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국가에 대한 비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국가를 신의 죽음 이후에 나타나는 대치 종교로 설명하며 격하시키고 있다. 대신 자기자신의 욕구와 정열에 대한 신뢰와 모험에 대한 용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몰락에 대한 용기도 강조되고 있다.
<배후 세계자들에 대하여>는 다른 형식 속에서 '짜라투스트라의 서설'에서의 요구사항을 반복하고 있다.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대지를 초월한 희망에 대해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이것은 초월자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고, 현존의 피안과 배후에서 참되고 영원한 그 무엇 혹은 다른 그 무엇을 부여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며, 동시에 삶의 내재적 의미를 회의하지 않을 것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의 설교자에 대하여>라는 장을 이러한 사상을 계속 전개시켜 나간다. 삶에 대한 회의 혹은 다른 이유에서의 삶에 있어 내재적인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며, 그 대신 삶으로부터의 도피를 설교하는 자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는 "어서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저주하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천 개의 목표와 한 개의목표에 대하여>, <시장의 파리 떼에 대하여>, <산상의 수목에 대하여>, <그리고 창조자의 길에 대하여>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와 낡은 의무의 파괴라는 중요한 사상을 정의하고 있다. 광범위한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개인적인 관점의 추구는 창조의 전제 조건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그 결과로서 고독과 고독해짐이 인식될 수 있게 한다.
<나누어주는 덕에 대하여>는 제1부의 종결이며, 절정을 이루는 장이다. 첫 단락은 남는 것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모든 것을 요청하고 형성하고 변형하는 덕, 즉 창조의 총괄 개념인 덕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둘째 단락은 내재성에 대한 외침을 반복하고 있다. 시험으로서의 인간, 착오 없이는 살 수 없고 많은 착오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에 관한 논제가 강조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부분은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많은 삶의 가능성과 삶의 관점에 대한 인식과 지식에 대한 길을 그리고 있다. 셋째 단락은 제자들과의 이별을 그리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의 연설을 신성한 이론으로 추종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율성에로 되돌아갈 것을 가르친다.
제1부에서 니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초인"이라는 단어인 것 같다. 초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그리고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형이상학적인 가치관으로 인해서 인간이 무시된 세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런 현실을 뛰어넘는 도덕적 자기 초극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인간이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이고,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더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초극되어야 할 존재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이 사라진 위선과 가식에 갇혀있는 이 세계를, 배후 세계론자들 즉 형이상학자들의 허황된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이 모든 가치들을 떠나 육체를 중시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런 기독교와 형이상학자들에게서 온 삶에 대한 권태에서 떠나 초인을 향해 인간의 본질을 찾고 더 나아가 형이하학적인 세계를 뜻하는 대지에 삶의 기반을 두고 그것들과 싸우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맞서 싸우면서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고독에 사로잡혀 고뇌와 싸우더라도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인간상이 될 때가 비로소 초인의 인간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한 초인을 어린아이에 비유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정신이 참된 자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정신적 단계인 세 가지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어떻게 사자가 되며, 끝으로 사자가 어떻게 어린아이가 되는지를 말한다. 이렇게 비유되는 인간의 정신세계의 변화는 낙타의 단계에서는 위해 자기를 버리고 타인이나 전통적 가치에 철저히 복종하고, 다시 낙타의 정신에 철저히 복종하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는 '사자의 정신'을 거쳐 어린아이의 단계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변화는 인간이 초인으로 나아갈 때의 과정으로, 처음에는 무거운 짐을 갖고 있는 낙타처럼 정신적 자유를 얻지 못하고 전통의 굴레에 매여 세상의 가치들을 그저 매고만 있는 상태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이러한 정신적 고뇌에서 기존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아니 버렸다기보다 더 위에 올라간 상태에서 정신적 자유를 찾아 창조의 단계에 오른 인간의 모습을 사자라고 비유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 복종하고 메여있던 것이 낙타였다면 다시 이모든 것을 버려버리고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고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사자인 것이다. 이런 정신적 자유를 찾은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사자는 할 수 없는 것을 어린아이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을 니체는 초인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유희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창조의 유희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순수하고 절대적인 자기 긍정을 하는 어린아이의 사유의 세계, 바로 처음 세상에 나올 때 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외부적인 유토피아 사상에 젖어 있지도 않고 자신의 의지와 행동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그러나 악하지 않게 행동하는 어린아이의 세계, 무수한 세계의 끝에 비로소 긍정자의 반열에 오른 초인의 모습, 즉 짜라투스트라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여기의 세 가지 비유는 니체 자신의 철학을 보이기 위한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자신의 사상적 성장과 초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 본연의 자유로움을 신적인 것에서 찾지 않고 생의 가운데서 인간 본질 그 자체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제1부에서는 초인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초인을 초점으로 하여 창조적 인간으로의 성장과,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도 자 신의 향상을 위한 계기로 바꿔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이 곳곳에 담겨져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가르침의 씨를 뿌려놓은 뒤 제자들과 작별하고 홀로 있기를 결심한다. 그는 "너희들이 모두 나를 부정했을 때 비로소 나는 너희들 옆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고별사를 통해 제자들이 자신의 설교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도록 타이르면서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맨 처음에 나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서두로 삼았다. 이 말이 지닌 의미를 잘 몰랐으나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니체는 아버지가 목사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그의 어린 시절과 적어도 청소년 시절까지는 기독교 아래에서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사상으로 둘러싸여 자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생활 환경이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니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기독교에 대한 원초적인 원망과 시기심보다는 자신이 사랑했던 기독교가 본래의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본질은 잃어가고 껍데기만 남은 모습에 실망하여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런 세상에서 나태해진 기독교인들에게 경각심을 깨우치자고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교의 교리와 인간의 욕구 속에서 갈등하고 메여서 어떠한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삶에 충실하라는 말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대지에 충실하여 초인이 되라는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삶에 주인이 되라는 기독교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 사상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새로운 주장이었으며, 그리고 그가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은 것으로 인하여 그의 생각은 미친 사상으로 치부되었으며 사회에서 배척 당하였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사상은 20세기 철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매우 선구적이고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 소설가 > 니이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용석의 니이체 해석 (0) | 2019.07.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