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크게 보아 '구원의 역사'이다. 아담의 첫 범죄sin 이후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때를 거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구원'이 올 때까지의. '구원'이 있기까지는 '죄'가 있어야 하므로 성서는 또한 '죄'의 역사이다.
그러나 '죄'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누구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누구든 "신(神)이 부과한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주장하려는 이는 '왜 카인이 십계명이 생기기도 전에 스스로를 괴롭게 해야 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그 '죄의 역사'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죄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다. 대개 사람들에게는 죄가 선험성Apriotät을 지니고 나타난다면,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속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구체Konkretum'를 지니고 나타난다. 여기서 '구체'가 왜 중요한가 하면, 법과 도덕이 항용 만나는 것이 바로 이 '구체'이기 때문이다. '구체'란 늘 법과 도덕의 '반증'으로서 그것들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을 '시험'하여 보다 과학적이도록 만든다. 칼 포퍼의 말을 빌리자면, '구체'가 법과 도덕의 '반증가능성'이 되는 것이다. 또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이 '구체'라는 것은 그것이 다만 개별적인 특수 체험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 소설이 가진 상징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풀어 말하면 이 소설이 법제도가 아니라 그 뿌리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법제도를 문제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법제도를 대신하는 잣대로서는 종교가 가장 유력하다. 그것은 세 명의 까라마조프가 갈라지는 분수령이 바로 종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관점에서 조시마 장로와 관련된 두 가지 에피소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이 소설의 종교관·윤리관과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악한 지경에까지 이른 장면은 너무나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다. 장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장로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던 알료샤는 겨우 장로의 한 팔을 부축할 수 있었다. 장로는 드미뜨리 표도로비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에게 다가가자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료샤는 장로가 기력이 쇠진하여 쓰러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장로는 드미뜨리 표도로비치 앞에 무릎을 꿇더니 그의 발에 대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완전히 조아리며 분명히 의식적으로 절을 했다. 알료샤는 그가 일어날 때 부축하는 것조차 잊을 만큼 얼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장로의 입가에는 가냘픈 미소가 가늘게 빛나고 있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모든 것을 용서해 주세요!」 (140쪽)
장로는 임종하기 직전에 "어제 난 앞으로 그에게 닥칠 위대한 고난을 향해 절했던 것이란다"(504쪽)라고 알료샤에게 일러준다. 장로는 '위대한 고난'이라고 말했다. 드미뜨리가 존속살해의 누명을 쓰고 20년형을 받은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누명을 쓴 것은 '고난'은 될 수 있어도 '위대한 고난'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고난 정도는 되어야 그 말에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드미뜨리의 고난 속에 그리스도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 된다.
사실 드미뜨리의 이미지는 소설 내내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이를테면 때때로 알료샤를 만나 선과 악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것이라든지, 누구와도 완전한 심정적 교류에 이르지 못하고 혼자서 표류하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그리스도 생애의 닮은꼴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결과적으로는 드미뜨리의 누명이 소설의 뼈대되는 줄거리라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드미뜨리의 누명이 단순한 누명이 아니라 '위대한 고난'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차근차근 소설을 되짚어보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미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복음서를 인용하여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의 복음서 12장 24절"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만인의 구원'을 가져왔다면, 드미뜨리의 '희생'은 사람들에게 직관적 양심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받아들인 이는 알료샤다.
인간의 모든 죄를 떠맡고 그 책임자가 되십시오. 벗이여, 바로 그것이 옳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에 대하여 만인에 대하여 진정으로 그 책임자로서 처신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그것이 진정으로 사실이며, 당신이야말로 만인에 대해, 모든 죄에 대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70쪽)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아도 좋고, 기적이 입증되지도 않고 기대했던 일이 당장 실현되지 않아도 좋다. 하지면 어째서 이런 불명예를,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며, 어째서 못된 수도사들이 말하듯이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 빠른 부패가 일어난 것일까? (602쪽)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의 아끼는 제자였고, 그래서 소설이 시작할 때부터 이미 종교관이 정립되어 있었다. 이반에게 "반드시 논리 이전에라야만 의미를 깨닫게"(410쪽) 된다고 강조하고 조시마 장로의 연설도 꼼꼼하게 메모하는 알료샤의 모습은 종교적인 측면을 강하게 내보인다. 그는 논리 이전에 그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조시마 장로가 죽은 후, 그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순간부터 알료샤에게서 종교적인 의무감은 사라져버린다. 처음으로 알료샤는 '왜(어째서)'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거기에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은 알료샤 자신이 찾아나서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는, 알료샤 자신이 잘 알고 있듯이 논리가 아닌 직관을 통해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짧게는 근대주의, 길게는 계몽주의까지 포괄하는 이성(理性)주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이성에 복속시키고 감성 등의 지표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국에 가서 '죄'의 문제까지를 이성 아래 위치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조시마 장로나 드미뜨리가 보기에 죄는 이성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이성은 죄의 반대자이며, 죄의 은폐자이다. 이성의 입장에서 보면 죄라는 것은 오히려 쉽게 사라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죄를 충분히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논리를 두고 상대를 굴복시킬 수는 있어도 설득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은 죄의식의 논리에 굴복당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이 이성주의의 최후를 소설 후반부에서 이반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다. 이반은 섬망증이라는 일종의 정신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반에게 섬망증이 나타난 경위를 생각해보면, 무신론자의 이성주의가 얼마나 사상누각(砂上樓閣)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섬망증은 두말할 것 없이 이반의 죄의식에서 오는 것이다. 이반이 실제로 아버지 표도르를 죽인 사실이 없다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듯 직관이란 항상 논리보다 선행하기 때문에 가장 철저한 이성주의자였던 이반까지도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직관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죄는 이성보다도 마음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드미뜨리는 알료샤에게
이성의 눈에는 치욕으로 보이는 것도 마음의 눈에는 끊임없이 아름다움으로 보이니까. 그러니 아름다움은
소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아름다움은 소돔 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넌
그 비밀을 알고 있니? 아름다움이란 무시무시한 것일 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것이란 사실은 정말 끔찍스러워.
거기에서는 악마가 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고 그 싸움터는 다름아닌 인간들의 마음이지. (198쪽)
여기서 아름다움은 '치욕'이나 '죄'와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성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에 아름다움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소돔" 속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선악의 싸움터에서의 죄를 말하는 것인데, 그 싸움터란 "다름아닌 인간들의 마음"이라고 드미뜨리는 규정한다. 이 철학적인 내용은 드미뜨리가 논리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떠올린 것이다.
그런 직관은 결국 꿈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드미뜨리는 판결 직전에 가서 '아귀(餓鬼)'와 관련된 꿈을 꾼다. 여기서 '아귀'의 꿈을 다른 사람이 아닌 드미뜨리가 꾸었다는 점은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 가령 이반이나 알료샤가 '아귀'의 꿈을 꾸었다면, 소설의 전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이반이 '아귀'의 꿈을 꾸었다면 그는 오히려 그것을 바탕으로 신없음을 증명하려 들 것이다. 혹은 최소한 무관심한 신(해서 쓸모없는 신)을 상정하려고 할 것이다. 또 만약 알료샤가 '아귀'의 꿈을 꾸었다면 그는 여전히 의심과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조시마 장로의 임종 이후에 알료샤가 '왜'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졌음은 아까 지적한 바이지만, 그런 알료샤의 심경은 아직까지도 극복되지 못하고 '경험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미뜨리는 직관과 행동이 사고보다 항상 앞서는 사람이다. 드미뜨리는 그 꿈 속에서 직관적으로 "지금부터는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무언가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890쪽)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드미뜨리가 그들보다 위에 군림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자신을 나눔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일찍이 조시마 장로가 "인간의 모든 죄를 떠맡"(570쪽)으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드미뜨리에 이르러 몸으로 (꿈에서나마) 실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미뜨리는 '희생'했다. 드미뜨리의 희생은 누구보다 알료샤에게 특히 의미있는 것이었다. 신의 존재와 종교의 규율에 대한 알료샤의 풀리지 않던 호기심은 드미뜨리의 희생에 이르러 말끔히 씻겨진다. 알료샤에게 모든 것은 지금껏 선험적으로 존재해왔지만 여기서부터는 경험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예전의 알료샤는 "어쩌면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지도 모릅니다"(393쪽)라는 식의 불명확한 모습을 보였다. 선험적으로 주어져있던 진리는 스스로를 주장하지 못하므로 항상 '의심'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데까르뜨의 회의(懷疑)도 '방법적 회의'라고는 하지만, 그의 전존재의 고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데까르뜨의 경우는 그래도 신뢰할 '이성'이 있었지만 알료샤는 그보다 더 막막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드미뜨리의 '희생'은 알료샤에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왜냐하면 드미뜨리는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죄인이라는 조시마 장로의 설교를 몸으로 체현해냈기 때문이다. 드미뜨리적인 몸의 진리는 조시마적인 말의 진리보다 훨씬 명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거기서 조시마 장로가 드미뜨리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했던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라고 봤을 때, 죄와 더불어 꼭 필요한 개념은 사랑이다. 드미뜨리와 까쩨리나가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대목이나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줄기였던 꼬마들이 일류샤를 잊지 않겠다고 하는 부분은 결국 '사랑'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몸이다. 그러나 사랑은 논리로 환원되지도, 추상으로 떨어지지도 않는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 '사랑'은 어디까지나 직관적이면서 경험적인 것이다. 여기에 와서야 얄료샤는 드디어 "그래, 우린 틀림없이 부활할 거야. 그리고 다시 만나 기쁘고 즐거웠던 지난날을 이야기하게 될 거야!"(1354쪽)라고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카인이 인류 첫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스스로의 직관으로 그것이 죄임을 깨달았던 것과 유사한 것이다. '죄의 역사'로서의 성서의 역사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보다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역사로 바뀐 데서, 우리는 이 책이 지니는 윤리·도덕적 의의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조시마 장로가 아직 속세에 있을 때의 청년기 회고,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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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방문객
그는 내가 근무하던 도시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공직생활을 하던 사람으로서 누구나 알 만한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부자인 동시에 사회 사업가로 알려져 있었고 양로원과 고아원 등에 상당한 거액을 희사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몰래 익명으로 많은 선행을 실천했다는 사실이 그가 죽은 후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나이는 오십 안팎이었고 단정한 용모에 말수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는 결혼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아내와 세 명의 어린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내가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바로 그 신사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사는 내 방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벌써 며칠째 여러 집에서 당신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어왔는데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해서 개인적으로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지나친 부탁이긴 하지만 거절하시지는 않겠지요. 선생님?〉
〈물론 기꺼이 해드리지요.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만큼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또 호기심을 갖기는 했지만 아직 그토록 진지하고 심각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찾아왔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 아파트에 손수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는 자리에 앉은 후, 〈당신한테서 나는 위대한 정신력을 발견했습니다〉하고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사람들의 멸시를 무릅쓰고 자신의 진실을 위해 그 사건에서 진리를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칭찬이 지나치신 것 같군요〉라고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내게 〈아닙니다.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일을 실천한다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솔직히 나는〉하고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몹시 감동을 받았으며,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을 찾아온 것입니다. 지나치게 무례한 나의 호기심을 불쾌하게 여기시지 않는다면 결투장에서 상대에게 용서를 빌던 그 순간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기억하고 계신 대로 말입니다. 내 질문이 경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와는 반대로 이런 질문을 드리는 데에는 말씀드리기 힘든 목적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건 당신께 차차 설명해 드리지요, 우리 두 사람을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말입니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줄곧 나는 그의 얼굴을 직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한 신뢰감이 드는 동시에 내 쪽에서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 속에 어떤 남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순간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고 묻고 계시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이지만 처음부터 모두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군요.〉그리고 나서 나는 아파나시아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이며 땅바닥에 엎드려 그에게 용서를 빌던 일 등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당신도 짐작하시겠지만〉하고 나는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결투할 당시 나는 마음의 부담이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에서 이미 그런 마음을 가지고 출발했으며, 일단 그런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그 뒤의 모든 일들은 힘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기쁘게 진행되었거든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너무나 유쾌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모든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군요, 다시 찾아와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거의 매일 밤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만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했더라면 우리들은 아주 가깝게 지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야기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내게 나 자신에 관한 질문을 던질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매우 사랑했고 내 모든 감정을 다하여 신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공명 정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 이상 그의 비밀은 알아서 무엇 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고 나이도 나보다 많았지만 나는 같은 젊은이를 찾아오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어서 나는 그로부터 유익한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인생은 낙원이라고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지요.〉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만 골몰하고 있습니다.〉그는 나를 쳐다보며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당신보다 더 많이 확신하고 있으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사람은 틀림없이 나한테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낙원이란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내 마음속에도 숨어 있어서 내가 원한다면 실제로 내일 당장 나한테 나타나 일생 동안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감정에 젖은 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마치 내게 질문이라도 던지듯 나를 신비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이어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 이외에도 만인에 대해, 그리고 만사에 대해 죄인이라는 당신의 말씀은 아주 지당하신 판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단번에 그런 사상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사상을 깨닫게 될 때 그들에게 꿈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천상의 왕국이 도래하리라는 확신이 드는군요.〉〈그게 언제 실현되겠습니까?〉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습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실현된다는 말씀인가요? 그저 꿈만은 아니란 말씀이시죠?〉〈그럼 당신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자신은 그렇게 설교하면서도 믿지 않으시다니. 당신이 말씀하셨듯이 그 꿈은 틀림없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걸 믿으세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는 규칙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 문제는 정식적인 것이고 심리적인 것입니다. 세상을 새롭게 개편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스스로 심리적 측면에서 다른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되기 전에는 형제애란 싹틀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과학, 어떤 이해 관계를 내세워도 자신들의 재산, 권리를 아무 탈없이 나눌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저마다 자기 몫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며 만사에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고 서로 시기하고 죽이려들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 그것이 실현될 것인지 물으셨지요. 그것은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인간 《고립》의 시대를 끝내야 합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고립이라뇨?〉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도처에서 군림하고 있으며 우리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며 아직 그 시기가 오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모든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애쓰면서 자기 자신에게서 성취된 삶을 누리고 실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충만한 삶의 완성 대신에 단지 완전한 자살 행위를 끌어낼 뿐입니다. 왜냐하면 자아 실현의 성취 대신에 완전한 고립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개체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토굴 속에 고립되어 버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를 감추며 자신이 가진 것을 감추고,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멀리하고 자신으로부터 사람들을 멀리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재산을 몰래 모으면서 이제 자신은 너무나 강하며 너무나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자신이 재산을 모을수록 점점 더 자살 행위 같은 무기력에 빠져드는 바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하나에 대한 기대감만을 지닌 채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서 전체로부터 떼어놓고서는 인간의 도움, 인간 자체, 인간성 등을 믿지 않도록 자신의 영혼을 훈련시켜서 자기 돈이, 그리고 돈으로 얻은 자신의 권리가 사라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 어느 곳에서나 인간의 이성은 개성의 진정한 보장이 고립된 개개인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전체에 있다는 사실을 냉소하며 이해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고립에도 최후의 순간이 찾아오고, 사람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를 단숨에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 사조 역시 그렇게 되어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주저앉아 빛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때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나라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아무튼 깃발을 잘 보존해야 하며, 비록 유로지비라는 호칭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은 혼자서라도 모범을 보여야 하고, 형제애적 소통의 행적을 바탕으로 고립으로부터 영혼을 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위대한 사상을 죽이지 않는 길입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열기와 환희에 가득 찬 토론의 밤을 하루 이틀 보내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교계와 인연도 끊었고 점차 초대받아 가는 일이 드물었으며, 그리하여 나에 대한 인기도 식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계속 나를 사랑해 주었으며 반갑게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교계에서 유행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며, 그 점만은 인정해 주어야만 합니다. 나는 마침내 나의 신비한 방문객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의 지혜에 대한 만족감 이외에도 그가 마음속에 어떤 의도를 품고 있으며 어쩌면 위대한 행적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의 비밀에 대해 공공연히 호기심을 드러내지도 않았으며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것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가 내게 무엇인가를 털어놓고 싶은 바람에 괴로워하는 듯하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적어도 그것은 그가 우리집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주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물어 왔습니다.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마을에서 우리 두 사람에 대해 매우 관심을 보이면서 내가 당신을 자주 찾는 것에 놀라고 있다는 사실을 ? 하지만 《머지않아 모든 것이 밝혀질 테니》마음대로 생각하라지요.〉
때때로 그는 심한 흥분 상태에 빠지곤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거의 언제나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때로는 내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 모양이군〉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이미 잘 알려진 평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종종 그는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랫동안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한 후에 그는 전혀 뜻밖에도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지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뚫어질 듯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어디 몸이라도 불편하신가요?〉
〈나는……아시겠어요……나는……사람을 죽였답니다.〉
이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에 그는 미소를 지었으나 그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이 사람은 대체 왜 미소를 지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나도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소리쳤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는 창백한 조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첫마디를 꺼내는 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이야기를 꺼냈으니 궤도에 들어선 셈이군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처음에는 물론이고 그가 사흘이나 나를 찾아와 상세히 이야기해 준 뒤에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엄청난 슬픔과 충격을 받은 채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14년 전 그는 우리 마을에 저택을 가지고 있어서 정착을 하려던 한 부유하고 젊고 아름다운 지주 미망인에게 엄청나고 끔찍한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꼈던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상당히 계급이 높은 어느 군인에게 마음이 기울고 있었으며, 그 군인은 당시 출정 중이었지만 그녀는 그가 머지않아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자신의 집에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발길을 뚝 끊은 그는 그녀의 집 구조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극히 파렴치한 생각을 품고, 발각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지붕을 타고 정원을 거쳐 그녀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흔히 그렇듯이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범한 범죄일수록 다른 경우보다 성공하기 쉬운 법입니다. 지붕 창문을 통해 고미다락으로 들어간 그는 계단을 타고 그녀의 거실로 내려갔습니다. 계단 끝에 있는 문이 하인의 부주의로 가끔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도 그런 실수를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거실로 숨어든 그는 어둠 속에서 램프가 타오르는 그녀의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마치 일부러 일을 꾸미기라도 한 듯 그녀의 젊은 두 하녀마저도 주인 마님께 여쭤 보지도 않고 몰래 같은 동네에서 열리는 이웃집 명명일 잔치에 가버리고 없었습니다. 나머지 하인들과 하녀들은 아래층 행랑방과 부엌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잠들어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본 그는 욕정이 타올랐지만 곧 복수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술 취한 사람처럼 제정신을 잃고 그녀의 가슴에 그대로 칼을 꽂았으며, 그래서 그녀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하인들의 소행으로 돌리기 위해 가장 악랄하고 능숙한 범죄자의 수법으로 일을 꾸몄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지갑을 훔쳤으며 베개 밑에 숨겨 둔 열쇠로 장롱을 열어, 거기서 얼마간의 물건을 다시 훔쳐내어 마치 무식한 하인이 저지른 소행처럼 꾸몄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폐들은 그대로 남겨 둔 채 현금만 훔쳤고, 꽤나 큰 금붙이 몇 점은 훔치면서도 그보다 열 배나 더 값이 나가는 작은 보석들은 손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밖에도 기념이 될 만한 물건 몇 점도 훔쳤으나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겠습니다. 그는 그처럼 엄청난 짓을 저지른 후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갔습니다. 다음날 난리 법석이 일어났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 후 평생을 통해서 그를 진짜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품고 있던 그의 연정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워낙 말수가 적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인 데다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친구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두 주 동안 그녀의 집에 찾아가지도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피살된 여인과 안면이 있을 뿐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농노 출신 하인인 뾰뜨르에게 혐의가 돌아갔으며, 그 혐의를 확신하기에 충분할 만큼 모든 정황이 일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인은 홀몸인 데다가 행실도 바르지 못하여 여주인은 자신의 농노들 중에서 신병으로 차출해야 할 사람으로 그를 점찍어 군대에 보낼 생각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녔으며, 그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품고 있던 그가 술 취한 김에 어느 술집에서 그녀를 죽여 버리겠다고 떠들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녀가 피살되기 이틀 전 그는 집에서 나와 읍내 모처에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살인 사건 다음날 고주망태가 되어 교외로 벗어나는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그가 발견되었고, 그의 호주머니에는 칼이 들어 있었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른손에는 피까지 묻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피가 코피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하녀들은 잔칫집에 갔으므로 자기들이 돌아올 때까지 계단으로 통하는 바깥문은 열려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밖에도 그와 유사한 증거들이 수없이 나왔기 때문에 그 하인은 꼼짝없이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체포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열병에 걸려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어 하느님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재판관들이나 당국이나 사회 전체가 그 범죄는 다름 아닌 죽은 그 하인이 저지른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벌이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나의 친구가 된 신비한 방문객은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 따위로 괴로워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괴로워했으나 그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을 죽였다는, 그리하여 그녀가 더 이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욕정의 불길이 여전히 피 속에서 들끓고 있는데, 그녀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사랑도 죽이고 말았다는 감정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다는 사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당시 거의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오직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자신의 양심 속에서 오랫동안 확신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인의 체포로 약간 고통을 겪었으나 곧 이은 그의 발병과 죽음이 그의 마음을 평온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당시 그는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그 하인은 체포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주인집에서 뛰쳐나온 후 고주망태가 되어 밤새 축축한 땅에서 뒹굴다가 얻은 감기 때문에 죽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훔친 물건과 돈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당시 그는 이것을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탐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돌리기 위해 도둑질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훔친 돈의 금액은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우리 읍내에 설립되었던 양로원에 희사했습니다. 도둑질에 대해 양심의 위안을 받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일을 한 것인데, 실제로 한동안은 마음이 편안했노라고 자기 입으로 내게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그는 매우 중요한 봉사 활동에 전념했었고, 2년간 자신에게 쏟아지는 힘들고 어려운 일 처리를 손수 도맡은 데다가 강인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지난 일들은 거의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억이 되살아날 때면 그 사건을 생가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입니다. 그는 자선 사업에도 열심이었고 우리 읍내의 많은 일을 처리하는 데 헌신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도시들에도 널리 알려진 결과 모스끄바와 뻬쩨르부르그 현지의 자선 협회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모든 일이 기억 속에서 고통스럽게 되살아나기 시작하여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아름답고 지성미 넘치는 한 아가씨를 좋아하게 되었고, 결혼이 자신의 고립된 비애를 쫓아 줄지도 모르며 새로운 길로 들어서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옛날의 추억들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곧 바로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 되는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신혼 생활 첫 달에 불과했으나, 〈아내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혹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라 그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의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아렸을 때 갑자기 그는 〈내가 직접 한 생명을 빼앗고도 다른 생명을 잉태하다니〉하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자식들이 태어나자 그는 〈내가 어찌 저 애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고 양육할 것이며, 어떻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할 것인가, 내 손에 피를 묻혔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들이 곱게 자라자 그들을 안아주고 싶을 때마다, 〈난 저 애들의 순진 무구하고 해맑은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그럴 자격이 없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살해된 희생자의 피가, 파멸되어 버린 그녀의 젊은 생명이, 복수를 외치는 그 피가 그의 눈앞에 무섭게 어른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무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강심장이었기 때문에, 〈내가 남몰래 겪는 이 모든 고통으로 속죄해야지〉하는 생각으로 한동안은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통은 점점 커졌던 것입니다. 그의 엄격하고 음울한 성격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사회에서 그는 자선 사업 덕분에 존경을 받게 되었고, 그에 대한 존경심이 커져 갈수록 더욱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게 고백한 바에 따르면 그는 종종 자살할 생각을 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다른 몽상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몽상은 처음에는 불가능하고 미친 짓처럼 여겨졌으나, 결국에는 가슴을 파고들어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 나아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하자는 몽상이었습니다. 그런 몽상을 가슴에 품은 채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것은 그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되면 자신의 영혼은 반드시 치유되며 영원히 평안을 누릴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지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의 결투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을 보면서 난 결심했습니다.〉
나는 손뼉을 치면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신가요? 그렇게 작은 사건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런 결심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
〈내 결심은 이미 3년 전에 마음속에 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사건은 거기에 자극을 주었을 뿐입니다. 당신을 바라보면서 나는 스스로를 꾸짖었고 당신을 질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는 엄숙한 표정까지 지으며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죠. 그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난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한 가지만, 한 가지만 해결해 주십시오!〉
마치 모든 문제가 내게 달린 듯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아내는 어쩌면 슬픔에 잠겨 죽을지도 모르고, 아이들은 귀족 계급과 영지를 빼앗기지야 않겠지만 영원히 유형수의 자식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 애들 가슴속에 얼마나, 얼마나 쓰라린 기억이 남겠습니까!〉
나는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영원히 그들과 헤어져 홀로 남게 되는 건가요? 영원히, 영원히 말입니다!〉
나는 제자리에 앉아 중얼중얼 속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서운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십시오. 사람들한테 밝히셔야죠.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진리만이 남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자라면 당신의 결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는 마치 당장이라도 결단을 내린 듯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두 주가 넘도록 매일 저녁 나를 찾아왔고, 마음속으로 결심은 하고 있었지만 결단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 마음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그는 강인한 모습으로 찾아와 감동적인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천국이 찾아오리란 것을, 내가 고백하는 순간 천국이 찾아오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옥 속을 14년이나 헤맸지요. 이젠 고통받고 싶습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며 살고 싶습니다. 거짓 세상을 살게 되면 그땐 뒤로 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가까운 이웃은 물론 자식들 마저도 사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오, 내가 겪은 고통이 아비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아마도 아이들은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나를 비난하지도 않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권력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진리 속에 계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행적을 모두 이해할 겁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이해하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진리에, 천상의 숭고한 진리에 봉사하셨으니까요…….〉
그리고 나면 위안을 얻은 얼굴로 돌아갔으나, 다시 다음날이면 험상궂고 창백한 얼굴로 느닷없이 찾아와 이렇게 냉소적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당신한테 찾아올 때마다 당신은 항상《또 왔군. 아직도 고백하지 않은 거요?》라고 말하려는 투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군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너무 멸시하지 마시고. 당신께서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를 밀고하러 가시지는 않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나는 넋을 잃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는커녕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나는 병이 날 정도로 괴로웠으며, 내 영혼은 눈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밤에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저는 지금, 아내한테서 오는 길입니다. 아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내가 집을 나올 때 아이들은 《안녕, 아빠, 일찍 들어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아동 교본』을 읽어요》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은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그의 두 눈은 빛을 뿜었고 입술은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가 갑자기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치는 바람에 탁자 위에 있던 물건들이 튀어 올랐습니다. 그토록 부드러운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건가요? 나 때문에 재판을 받은 사람도, 유형을 간 사람도 없으며, 그 하인은 병으로 죽은 거란 말입니다. 그간의 고통으로도 피를 흘리게 한 대가를 치른 셈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증거도 믿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꼭 자백해야 합니까, 꼭? 아내와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피를 흘리게 한 대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와 함께 그들을 파멸시키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요?
우리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진리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그 진리를 이해하고 높이 평가하고 존경할까요?〉
〈이런!〉
나는 속으로 혼자 생각했습니다.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존경을 생각하다니!〉
그런 생각뿐만 아니라 그때 그가 너무나 불쌍하게 여겨져서 그를 위로할 수만 있다면 그의 운명을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거의 정신나간 것 같은 그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그 결단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 이성으로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영혼으로도 깨달으며 나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내 운명을 결정해 주십시오!〉
그는 소리쳤습니다.
〈가서 자백하십시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단호한 어조로 속삭였습니다. 나는 탁자에서 러시아어판 성서를 집어 〈요한의 복음서〉12장 24절을 펼쳐 보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나는 그가 도착하기 직전에 그 구절을 읽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건 진실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으나 쓴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성서 속에서는〉하고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습니다.
〈어떤 두려운 내용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걸 주제넘게 사람들의 코끝에 들이대기란 쉽겠지요. 그런데 도대체 누가 그것들을 썼단 말입니까, 그 역시 인간이 아니던가요?〉
〈성령께서 쓰신 것입니다.〉
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으나 그 미소는 증오심에 차있는 듯했습니다.
나는 다시 책을 집어 다른 데를 뒤적여서는 〈히브리 인들에게 보낸 편지〉10장 31절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읽어 내려갔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 구절을 읽은 그는 책을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습니다.
〈무서운 구절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당한 구절을 찾아내셨군요, 할말이 없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럼〉하고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아마도 더 이상 찾아오지 못할 듯싶습니다……. 천국에서나 만납시다. 지난 14년 동안 마치《살아 계신 하느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14년을 그렇게 불러야 옳겠지요. 내일은 제발 나를 풀어 달라고 그 손에 빌겠습니다…….〉
나는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으나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몹시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에 쳐다보기조차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오, 저 사람은 어디로 떠났을까?〉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신속한 중재자이자 구원자이신 지순한 성모께 그를 위해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눈물로 기도를 드린 지 30분 가량이 지났을 때 이미 밤이 깊어 거의
〈어디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내가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무언가 잊은 것이 있어서……아마도 손수건인 듯싶은데……. 아니, 잊은 것이 없더라도 잠시 앉아 있게 해주십시오…….〉
그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습니다.
〈당신도 앉으시죠.〉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우리가 약2분 가량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그는 내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보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었습니다, 기억나는군요, 그 다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힘껏 끌어안은 후 입을 맞추었습니다.
〈잊지 말게〉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자네를 다시 한번 찾아왔다는 것을. 이 점을 잊지 말라고!〉
그는 처음으로 나를 〈자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떠나 버렸습니다. 〈바로 내일이로군〉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 예견은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다음날이 그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전혀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아 누구로부터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생일에는 매년 큰 모임이 있었으며 읍내 사람들이 모두 모이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만찬이 끝나자 그는 한복판으로 나왔는데 그의 손에는 관청의 정식 보고서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경찰서장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고, 그 속에는 모든 범행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냉혈한인 본인을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시키고자 하며, 하느님께서 저를 찾아 주셨으니 고통을 감수하고자 합니다!〉라고 보고서는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지난 14년 동안 보관해 왔으며 자신의 범행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혐의를 피하려고 강탈한 피살자의 금붙이, 피살자의 목에서 벗겨 낸 목걸이와 십자가―그 목걸이 속에는 피살자의 약혼자 초상화가 들어 있었습니다―그리고 수첩 한 권, 두 통의 편지가 그것이었습니다. 한 통의 편지는 그녀의 약혼자가 곧 도착한다고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었고, 다른 한 통은 다음날 우체국에 가서 부치려고 책상 위에 놓아 둔, 약혼자의 편지에 대한 그녀의 답장이었습니다. 그는 두 통의 편지를 집어 왔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물적 증거를 없애지 않고 14년 동안이나 보관한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내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었는데, 한결같이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환자가 떠들어대는 헛소리라고 간주하여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온 동네에서는 그 불행한 사나이가 미치고 말았다고 단정하게 되었습니다. 경찰서와 재판소는 사건을 진척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그들도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 서류들이 신빙성 있는 것으로 판정된다 해도 그 서류들만을 토대로 결정적인 유죄 판결을 내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녀가 지인인 그를 신뢰하여 직접 그 모든 물건들을 맡겼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피살자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통해서 그 물건들이 진짜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거기에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다고 나중에 소문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이번에도 매듭지어질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약 닷새 후 사람들은 그 수난자가 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나로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소문에 의하면 그의 병은 심장 장애라고도 했습니다.
그의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의사들은 그의 정신적인 상태를 문제삼아 그가 이미 정신 착란을 앓고 있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나한테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문병을 가려고 하자 사람들이 특히 그의 아내가 오랫동안 나를 비난했습니다. 〈그분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그의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전에도 우울한 사람이었는데, 지난해에는 그가 유별나게 흥분을 잘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모두 눈치채고 있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그분을 죽인 거예요. 그분을 피곤하게 만든 사람은 바로 당신이고, 한 달 내내 당신한테서 벗어나지 못하셨어요.〉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그의 아내뿐만 아니라 읍내 사람 모두가 〈그건 모두 당신 잘못이야〉하고 말하며 내게 대들며 나를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명명백백한 자비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사람의 정신병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와의 면회가 허락되었는데, 그가 나와의 작별 인사를 완강히 고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의 생명은 며칠도 아니고 단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쇠약해지고 황달 증세가 나타난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숨을 헐떡거렸지만 감동과 기쁨에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해냈다네! 오래 전부터 자네가 보고 싶었는데, 어째서 찾아오지 않은 거지?〉
나는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가엾이 여기시어 그 품으로 부르고 계시다네. 나는 내가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기쁨과 평화를 느끼고 있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마자 난 내 영혼 속에서 천국을 느꼈던 거야. 이젠 내 아이들을 사랑할 수도 있고 그 애들한테 입을 맞춰 줄 수도 있어.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도 않고 또 아무도 귀기울이려 하지 않아. 아내도, 재판관들도 말이야. 게다가 아이들도 전혀 믿지 않고 있지. 그걸 보면 내 아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알 수 있거든. 나는 죽어가지만 내 이름은 아이들에게 오점을 남기지 않게 될 거야. 그래서 지금 하느님을 예감하고 있고, 마음은 마치 천국에서처럼 기쁘거든……의무를 다했으니…….〉
그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을 헐떡거렸으나 내 손을 꼬옥 쥐면서 불타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그의 아내는 우리들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내가 자네를 두 번이나 찾아갔던 일을 기억하나? 한밤중에 말이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었잖아?
자네는 내가 왜 자네 방으로 들어갔는지 알고 있나? 바로 자네를 죽이러 들어갔던 거야!〉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습니다.
〈그때 난 어둠을 헤치고 자네 집에서 나와 거리를 헤매면서 나 자신과 싸웠다네. 그런데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자네가 미워지더군. 《지금 나를 구속하고 있는 유일한 재판관은 그놈뿐이야. 그놈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나는 내일 형벌을 면할 길이 없어》라고 나는 생각했지. 난 자네가 나를 고발하는 것이 두려웠던 게 아니라(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어), 《만일 내가 자신을 고발하지 않으면 내가 그놈을 무슨 면목으로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던 걸세. 자네가 세상 끝에 가 있더라도 살아 있다면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자네가 죽지 않은 채 모든 사실을 알면서 여전히 나를 심판하고 있다는 생각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니까. 나는 마치 모든 원인이, 모든 잘못이 자네한테 있는 것처럼 자네를 증오했어. 그리고 그때 자네 탁자 위에 단도가 놓여 있던 것이 생각나서 자네 집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라네. 나는 자리를 잡은 뒤 자네한테도 앉으라고 한 다음 꼬박 1분 동안 생각했지. 만일 내가 자네를 죽였다면 과거의 범행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그 살인 때문에 난 파멸하고 말았을 거야. 그러나 그 순간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어. 나는 단지 자네를 증오했고, 모든 일에 대해서 젖먹던 힘을 다해서 복수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나의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속에 있는 악마를 물리쳐 주셨어. 알아두게, 자네가 그때처럼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일주일 후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읍내 사람 전체가 그의 주검을 묘지까지 전송했습니다. 사제장이 감동적인 조사를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생명을 단축시킨 그 무서운 질병을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검을 안치하고 나자 온 읍내 사람들이 내게 반기를 들고는 상대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만이 그의 고백이 진실임을 믿었지만 나중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고, 나를 찾아와 호기심과 기쁨이 충만한 눈으로 묻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공명 정대한 사람의 타락과 치욕을 좋아하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침묵을 지켰고, 그 읍에서 완전히 떠나 5개월 후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확고하고 장엄한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게 이 길을 분명히 지시해 준 보이지 않는 운명을 축복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까지도 일상의 기도 속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은 하느님의 종 미하일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제3부 6권, 2장〈수도 사제 고 조시마 장로의 진술을 바탕으로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가 작성한 그의 생애전〉
[출처] [본문스크랩] 조시마 장로의 회고 -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中에서|작성자 오디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