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의 첫 번째 시선은 단순한 눈의 대변자가 아닌, 모든 불안하고도 넋 나간 감각들이 내미는 창문을 통해 자기가 바라보는 육체와, 그 육체의 더불어 영혼을 만지거나 사로잡아 함께 데려가려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내 두 번째 시선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곧 소녀를 목격하고는 그녀와 멀리 떼어 놓으려고 나보고 앞장서서 달려가라고 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그녀로 하여금 강제로 내게 주의를 기울이고 나를 알도록 하려는 무의식적으로 애원하는 시선이었다. 소녀는 눈동자를 앞과 옆으로 굴리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살펴보았는데, 아마도 우리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무관심하고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돌리고는 우리 시야에서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고 옆으로 비켜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그녀를 보지 못한 채 계속 걸으며 나를 앞질러 가는 동안, 그녀는 내 쪽으로 눈을 길게 흘기며, 특별한 표현이나 나를 쳐다본다는 기색 없이, 그러나 뚫어지게 뭔가를 감추는 듯한 미소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받은 좋은 교육의 관념에 비추어 본다면 모욕적인 경멸 표시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그런 미소였다. 동시에 그녀는 무례한 손짓을 하고있었는데, 내 마음속에 있는 예의범절 소사전에 따른다면, 그 손짓이 모르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보내졌을 경우에는 건방진 의사 표시라는 단 하나의 의미만이 있었다. .... 온순하지만 꿰뚫을 수 없는 앙큼한 표정으로 멀어져 갔다....
재스민관 비단향꽃무위에서 발음된 그 이름은 초록색 분무기가 내뿜는 물방울처럼 날카롭고도 신선하게 내 곁을 지나갔으며, .....순수한 대기 아래 지대를 소녀의 신비로운 삶으로 적시고 무지갯빛으로 빝나게 하면서, 그녀와 함께 살며 여행하는 행복한 이들에게는 그녀를 가리키고, 내 어깨 높이에 있는 분홍색 산사 꽃 아래의 내게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그들만의 내밀한 본질을, 그리고 그 내밀성과 더불어 내가 들어가지 못하는 그녀 미지의 삶을 펼치고 있었다.
1부 스완 부인의 주변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3권 322쪽~
우리는 항상 다른 존재들로부터 떨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사랑할 때면 이 사랑이 그들의 이름과는 무관하다고 느껴 미래에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 어쩌면 과거에 이미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해 느꼈는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사랑의 모순을 철학적으로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인다면 이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사랑을 느끼지 못해 그렇게 마음 편하게 말하는 것이면, 따라서 사랑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4권 16쪽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스러운 탐색 후에야 얻을 수 있으며, 이러 최고 선을 위해서는 내 기쁨을 추구하는 대신 우선 그 기쁨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완네 집 쪽으로 1 307
그날 이후 내가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을 갈 때면 내겐 문학적인 재능이 없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유명한 작가가 되기를 단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예전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내가 느끼는 회한은, 홀로 떨어져 몽상에 잠길 때면 얼마나 나를 괴롭게 했던지, 또 그런 회한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 정신은 스스로 그 고통에 대한 일종의 억제책으로 시나, 소설, 재능의 결핍 탓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내 시적 장래에 대한 모든 생각을 아무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느닷없이 지붕이며 돌 위로 기쁨을 주며 반사되는 햇빛이며 오솔길 향기가 나에게 어떤 특별한 기쁨을 주며 멈추게 했는데, 그거들은 내가 보는 것 너머로 무언가를 숨기고 나에게 와서 붙잡으로고 초대했지만,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나는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숨겨진 것이 그것들 속에 있다고 생각되어 꼼짝 않고 바라보며 숨을 들어마시고, 이미지나 향기 저편으로 내 상념과 함께 가려고 애썼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뒤를 좇아 계속 길을 가야만 했을 때에도 눈을 감고 그것들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 물론 일찍이 내가 잃어버렸던 희망, 장차 소설가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되돌려줄 수 있는 그런 인상은 아니었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 Marcel Proust
이양하의 수필 중에서
야심은 영광보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욕망은 꽃을 피우나,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 인생을 사는 것
보다 인생을 꿈꾸는 편이 낫다. 설혹 인생을 산다는 것이 역시 인생을 꿈꾸는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직접 인생을
꿈꾸는 데 비하면 훨씬 신비롭지 못한 동시에, 훨씬 명료하지 못하고 반추하는 동물의 희미한 의식 가운데 산재하는
꿈같이도 취약한, 둔중한 꿈을 가지고 꿈꾸는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각본은 극장에서 연출되는 것보다 서재에서 읽
는 편이 더 아름답다. 불후의 연인을 그려낸 시인은 흔히 하숙의 평범한 하녀밖에 알지 못하였었다. 그리고, 사람들
이 부러워하는 탕자는, 또 이와 반대로 그들이 보낸 생활이라고 하느니보다 생활이 그들을 이끌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편이니만큼, 생활이란 걸 생각할래야 그 방도를 알지 못한다. 나는 몸이 약하고 상상력이 지극히 조숙한 열
살 되는 소년을 안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소녀에게 순진한 사랑을 바쳤다. 그는 그 소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언제든지 창가에
섰곤 하였다. 그는 소녀를 보지 못하면 울고, 보면 또 봤대서 울었다. 그가 그 소녀 곁에서 지내는 순간은 지극히 드
물고 또 지극히 짧았다. 그런데, 그는 침식을 잊어버린 어떤 날 창에서 몸을 던졌다. 사람들은 처음 그가 죽으려 한
것은 소녀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을 절망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로, 그가 죽은
그가 그 소녀와 장시간의 담화를 나눈 뒤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소녀는 그에게 지극히 친절히 대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상상하였다. 요컨대, 그는 이러한 도취(陶醉)를 다시 거듭할 기회가 없을 것을 생각하고
삭막한 여생을 마친 것이라고. 그러나, 그가 그의 동무의 하나에게 때때로 고백한 바로 미루어 보면, 그는 그의 소위
그 꿈의 여왕을 만나 볼 때마다 일종의 기만(欺瞞)을 느끼곤 하였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그 소녀가 가 버리면 곧
그의 풍부한 상상이 옆에 있지 아니하는, 소녀 위로 날아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이 의외의 기만의 이
유를 언제든지 사정의 결함 가운데 찾으려 하였다. 최후에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성숙한 공상에 이끌려 그가 아직 회
의하고 있던 그의 연인을 최고의 완전성에까지 높여 놓았었다. 그리고, 작별한 후 이 완전치 못한 완전성을 그가 생
사를 도(賭)하던 절대적 완전성과 비교하여 보고는 아주 실망하여, 마침내 창에서 몸을 던져 버린 것이다. 그 후, 그
는 바보가 되어 오랫동안 살았다. 그리고, 그 추락에서 얻은 것은 영의 망각, 사고력의 망각,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연인의 말의 망각이었다. 소녀는 간청도 받고 위협도 받았으나, 그와 결혼하여 그에게는 이렇다할 아무런 보람도 없
이 수년 후에 죽고 말았다. 인생은 이 소녀와 방불하다. 우리는 인생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을 꿈꾸기 때문에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려고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인생을 살려고 하면, 이 소년과 같이 치둔(癡鈍) 가운데 몸을
던지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물론 이 소년과 같이 돌연히는 아니라고 하여도, 왜 그러냐 하면 인생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우리의 알지 못하는 뉘앙스로 하강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 살쯤 되면 사람은 벌써 꿈을 인정치 아니하거나
아주 버리거나 한다. 그리고는 소와 같이 그 때 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과의 결혼에서 우리
의 의식적 불후성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누가 알리요.
이 글에는 제목이 없다. 별로 설명의 말을 붙일 필요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여기 있는 소년의 이야기
는 비록 현실미는 희박하나, 지이드로 하여금 찬탄해 마지 아니하게 한 프루스트의 치밀하고 미묘한 고나찰의 일단이
었다는 것만을 지적해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스러운 탐색 후에야 얻을 수 있으며, 이런 최고 선을 위해서는 내 기쁨을 추구하는 대신 그 기쁨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셸 프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