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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중 여자7에서

골뫼사니 2016. 6. 8. 09:13

새소리를 들을 때, 나는 새의 종족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소리를 내고 있는 새의 개별성을 확인할 수는 없다. 나는 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소리는 나를 소외시킨다.------- 김훈의 생각

 

<나의 생각>

김훈 선생님의 생각에 따르면 나는 내가 이름을 모르는 식물들로부터 소외되었다. 내가 이름을 알더라도 이름 이외에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식물들에게도 소외되었다. 처음 만나는 꽃들에 다가가려면 이름을 알아야 한다. 이름을 몰랐을 때, 나는-----. 지금 이름은 알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절벽이나 다름없다. 어둠이다. 어둠 앞에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 식물의 의미, 약초로서의 가치. 삶 등일 수도 있꼬, 다른 뭐언가 인간의 삶과 관계된, 유추된 진실같은 것, 아! 이 식물의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에 이 식물을 인간의, 나의 삶의 견주어 변주되는 아름다움, 참다움, 이런 가치 있는 의미를 찾아보보는 것---------

이런 점에서 나는 소외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식물로부터 산으로부터 강으로부터 외부로부터 너를 비롯한 인간으로부터 의미를 찾아낼 수 없을 때, 아름다움, 참다움, 이치 등을 꺼내올 수 없을 때 나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소외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는 나는 죽은 인간이다. 생각이 살아있는 인간, 모든 것에 새로움을 찾아내는 인간, 창조적 인간, 이런 인간이기를 나는 욕망하는 것인가 보다. 아니 욕말하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 바르게 사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생로병사를 거쳐 망각의 세계에 묻히고자ㅏ 한는 것이 아니라, 죽어버릴 나를 이 지상에 남기고자 하는 헛된 미망에 사롭잡혀 있는 것이다. 죽어버릴 나에 나는 얼마나 집착하는 가, 살아있는 육체와 나의 자존감을 버리면서까지 생명활동을 하면서도 즉 비굴하게 살면서도 흩어져 버릴 나에 집학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재능없음과 실력없음과 노력 못함과 인내 부족과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심약함과 두루두루 없는 나의 책임이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은 이 소외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소외로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 굳이 이를 알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몰라도 효도하고 인애하고 측은지심하고 돈 벌고들 잘 살아가지 않은가?

구태여 이 글귀 하나만으로 나를 소외라고 규정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 소외를 극복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인간들이 세계에 발언한다. 그로부터 우리는 소외된 바 우리는 작은 빛을 맛본다. 소외는 스스로 다가가려는 노력. 이 붇난한 인간의 인고의 노력 끝에 극복된다.

그러므로 게으르고 나는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끈기가 부족한 나는 창의성이 부족한 나는 기억력이 부족한 나는 끝내 소외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소외를 극복한 이들의 깨달음, 오도송이나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들의 재능에 그들이 밝혀낸 진리에 아름다움에 나는 감동할 것이다. 질투의 심정을 저 밑바닥 땅 밑으로 발을 꾹꾹 놀러 보내며, 나는 감동할 것이다. 내가 못 가본 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