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도 뚫지 못하는 합성 섬유
다른 표기 언어
목차
펼치기1975년 연말 미국 시애틀에서 순찰중이던 한 경찰이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강도에게 권총을 맞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경찰은 쓰러지지 않았고 피를 흘리지도 않았다. 그는 로봇이었던가? 아니다. 다만 그는 제복 속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을 뿐이다.
합성 섬유 중에는 아라미드라고 부르는 초강력 섬유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케블라다. 이 섬유는 종래의 방탄조끼 제조에 사용했던 티탄과 철의 합금 섬유에 비견할 만한 강도를 지니면서도 훨씬 가벼워 조끼를 경량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착용성도 금속 섬유보다 우수하고 미관도 훨씬 뛰어났다. 케블라 방탄조끼는 흔히 앞뒤 겉면은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가운데는 8~10장의 케블라 직포로 되어 있다. 이밖에 케블라 섬유는 방탄모 및 기타 복합재료 제조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섬유는 너무 빳빳해서 일반 옷감을 만들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이보다 강도는 좀 떨어지지만 더 부드러운 노멕스라는 아라미드 섬유가 우주복, 소방복 및 보호장갑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더욱이 노멕스는 열에도 잘 견딘다.
합성 섬유 기술의 발전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섬유가닥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보온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동시에 한층 가벼워진 섬유, 빨아 입을 수 있어 물실크라고 부르는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인조 비단, 둥글지 않고 각이 지게 방사한 직물을 만들어 한복으로 지어 입고 다니면 천연 비단처럼 사각사각 소리가 나도록 만든 섬유, 정전기를 막을 수 있게 변형시킨 섬유, 잘 타지 않게 만든 섬유, 고무줄처럼 탄력이 큰 섬유 등은 모두 우리나라에서도 생산되고 있는 최신 섬유들이다.
방수 스키복이나 방수 재킷은 더욱 신기하다. 이 제품들의 광고를 보면 땀은 잘 빠져나가지만 빗물은 스며들지 않는다고 한다. 땀이나 비의 주성분이 동일한 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 옷감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매우 미세한 구멍들이 수없이 많은데, 마치 여러 겹을 겹쳐놓은 거미줄처럼 보인다. 이 구멍들의 크기는 대략 0.02~15마이크로미터로 수증기 분자의 약 7000배에 해당하지만, 물방울 크기에 비하면 2만 분의 1 정도다. 따라서 물방울은 통과할 수 없지만 수증기 분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병뚜껑, 빨랫줄, 합성 종이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폴리프로필렌(PP)으로 이런 특수 재킷을 제조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는 인조 스웨이드(섀미라고도 하는 부드럽게 무두질해 보풀이 있는 가죽) 또한 신비한 신소재 섬유 제품에 속한다. 이 제품은 보통의 섬유보다 훨씬 가늘게 뽑은 극세섬유(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 섬유를 사용)로 퍼(fur) 구조를 만든 후 가죽처럼 탄성을 갖도록 내부층에 폴리우레탄 수지를 침투시켜 제조한다. 천연 스웨이드 표면에는 가느다란 콜라겐 섬유가 밀집하여 정돈되어 있으며, 합성 스웨이드는 바로 이 천연 스웨이드를 모방해 제조한다. 이렇듯 개발해야 할 첨단기술과 제품이 한없이 많은데 요즈음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말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