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은 양심을 일깨우는 죽비 소리

루쉰식 혁명과

골뫼사니 2014. 10. 29. 15:40

P6

또, 어느 날엔, 루쉰의 도저한 반항과 용기 있는 삶은 그가 통찰했던 삶의 허무감, 존재의 가벼움에서 비롯하였으며, 그 허무를 극복한 데에서 오는 힘에서 가능했음이 보였다.

 

P8

루쉰식 '혁명'의 유일한 무기는 자기 자신이다. 그가 노래한 전사의 무기는 "오로지 그 자신뿐이며, 맨손으로 던지는 야만인들의 투창만 들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루쉰의 계몽 의식 '혁명'의'자기근거'를 어떻게 중국 민중이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모색의 점철이었다. 그것은 명확한 현실인식과 실천적 행동, 그로부터 가능한, '옛 법' 즉 옛 문화를 바꾸려는 신념과 그것의 실현방법 가능성을 담보하는 일이기도 했다.

루쉰식의 '혁명'은 습관, 풍속, 문화를 바꾸는 인문학적 '혁명'이며 이상을 향한 인간의 숙명적 과제로서의 '혁명'이기도 하다. 정신의 세계가 밝아지지 않고는 어떤 '혁명'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 1920년대 루쉰의 생각이다.

 

P9

이념상으로는 대립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는 루쉰에게 갈등과 배척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견인하고 비추어주는 가치 범주였다. 민족을 토대로 개인의 가치를 사고하고 개인의 각성과 개인의 해방을 토대로 민족의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한것이다.

 

P12

새로운 창조는 전통과 역사 위에서 가능하며 그 전통과 역사 위에서 사색하여야 함을 루쉰은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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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생각이나 수단을 살피되 현재를 비추어보면서 사유하고 있는 루쉰, 그런 사유 과정에 루쉰 특유의 회의와 부정의 사유방법이 작동하였을 것이며 "모름지기 만사는 연구해보아야 알 수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그는 자기 확신을 얻을 때까지 그것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였을 것이다.

 

P33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 상식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루쉰은 회의를 품었다.

 

P35

'세심'함과 '의심'이인간의 사유과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 사유의 주도면밀함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역할할 수 있다. 루쉰은 주관적이고 일면적이며 표면적인 관찰로 얻은 단순화된 결론을 쉬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대상 및 그 모순의 각 측면에 대해 정밀한 관찰과 사고, 연구를 하였다.

 

P38

1927년 상하이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무장봉기 성공과 난징이 북벌군에 의해 수복된 것을 경축하는 글을 청탁받고 이를 써야 하는데, 작가는 혁명을 경축하는 글을 쓰기에 앞서, 혁명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전사나 소년병, 소식이 끊긴 옛 동료들을 문득, 문득 떠올리는 것이다...원고지를 앞에 둔 그의 사유들은, 작은 싸움에서의 승리감에 도취하는 것이 오히려 혁명정신을 흩어지게 만드는 것임을 이야기하고자, 그래서 오늘의 경축이 있을 수 있도록 목숨 걸고 싸웠던 혁명가들을 진정으로 기억하고 추모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주제의식과 그것에 뿌리를 둔 연상들이다.

 

P54

'근대적 주체'의 자아형성 과정에 나타나는 루쉰의 자기 부정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민족 전체를 향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격앙된 감정이 더 이상은 아무런 현실적 타개의 역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루쉰은 자신의 격정을 냉정함으로 전환시키는 무서운 이성의 힘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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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통해 계몽을 해보겠다고 한껏 기대를걸었던 "외국소설집"의 판매가 실패한 것이 그것이다. 루쉰은 처음으로 무료함을 느꼈다고 고백하였다. 마치 끝없는 벌판에 홀로 버려진 듯한 자신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었으며 비애와 적막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손을 높이 처 들고 외치면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는 그런 영웅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격정과 열정에 자신을 맡길 수 없음을 안 것이다.

 

P57

'식인'이라는 민족적인 원죄로부터 중국의 어떤 사람도 면죄 받을 수 없다는 인식, 이것이 루쉰 참회의 출발점이며 루쉰 문학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다. "광인일기"의 줄거리는 미친 사람인 주인공 '내'가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공포감을 느끼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이야기는 다시 형을 포함한 온가족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것의 발견으로 발전하면서 급기야는 일전에 죽은 여동생의 고기를 어머니도, 형도, 부지불식중에 자기 자신도 먹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아간다. 물론 이는 광인의 과대망상이라는 문학적 서술 장치를 통해 전달된다. "4천년 동안 사람을 잡아먹어온 이력을 가진 나"라고 하는 최종 심급의인식, 나 역시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의 하나였다고 하는 통렬한 자기인식에 이른 광인은 심한 공포와 수치심으로 포효한다.

 

P79

그가 생각하는 인간 정신의 개조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위해서 였다. "문화편향론" 결론에서 그는 "이 때문에 천지 사이에 생존하고 있으면서 세계 영강과 경쟁하려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사람이 선 후에야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사람을 세우기 위한 방법으로 개성을 존중하고 정신을 발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P120

폴이야말로 바보였습니다. 세상에 반나절 만에 싹을 틔우는장미꽃이 어디 있어요. 꽃씨는 아직도 흙 속에 있거든요. / 끝까지 싹이 나오지 않으면,아마 세상에는 장미꽃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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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대화 과정에서수없이 나왔던 조급한 구국론자들, 실천론자들을 '폴'에 비유하여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서구지향성을 '폴'이라는 서양사람 이름에 은밀히 빗대고 있다. 운동의 부침,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신문화 전파자들, 조급한 희망과절망에 좌지우지되는 동족에 대해 비판과 경계를 하고 있다.

 

P143

루쉰이 루쉰으로서의 역사적 의의가 있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그의 훌륭한 현실인식과 투쟁의 정신, 혁명정신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동스럽게 표현해낼 수 있었던 예술적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P172

루쉰의 생애를 압축하여 표현하는 '절망과 희망', '암흑과 광명', ' 멈춤과 전진' 등은 모두 극단의 이중적인 사회성격이 작가에게 투영된 결과이다. 그것을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망, 암흑, 멈춤 등 전자는 현실인식의 결과 이며 희망, 광명, 전진 등 후자는 작가의지의 소산이다. 루쉰의 루쉰다움은 이 후자를 방패로 삼아 그것의 가치실현을 위해 전력투구한 것에 있음은 이미 주지하는 사실이다.

 

P174

루쉰의 세계가 절망적이고 카뮈의 세계가 부조리하였다면, 만해 한용운의 세계상은 침묵과 부재의 세계다. "님의 침묵"에서의 '님의 침묵'은진리와 진실의 침묵이며 세계의 침묵이다. 님(진리, 진실, 자유...)은 언제나 부재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님을 그리는 '나'의 세계관은 비극적이며 삶 자체가 괴로움이다.

 

P185

루쉰이 "악마파시의 힘"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의 핵심은 '저항'과 '실천'의 문제다. 그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침이 마르도록 찬미한 영국의 시인, "스스로 존귀한 자"인 바이런이 "하늘과 싸우고 세속에 저항"했다고 칭송한 것이나, 악마파시인의 선정 기준으로 "반항에 뜻을 세우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것을 강조한 점들이 그러하다.

 

P236

창조의 여신인, 여와의 무료함에서 시작한 창조행위와 열정적인 파괴행위,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에 대해 가지는 연민과 동정, (분명하진 않으나) 그로 인해 하늘을 보수하고자 결정하는 여와, 혼란과 부질서 속에서 "먼저 수리부터 하자."라는 여와의 말투는, 현실에서 요구되는 급선무를 찾아 쉼 없이 움직였던 작가 자신을 방불케 한다.

P238

루쉰에게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가치에 대해 열린 사유구조를 가졌다는 점, 비결정론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는 점, '나그네'의식, '중간물' 의식의 도저함으로 삶을 일관하였다는 점, 이것이 바로 그를 어느 한시기의 인물로 머물지 않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가치나 이데올로기에 정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가능하였으며, 그러한 자기부정에는 그의 철저한 회의정신과 부정정신이 작동하였음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P249

근본이 무너지고 정신이 방황하고 있으니 중국은 자차 후손들의 다툼속에서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파악성론)

여기서 우리는 부박한 시대사조를 개탄한 루쉰의 가장 큰 관심사가 '근본'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긴 글에서 당시 유행하고 있는 국가관이나 세계관, 미신 타파를 주장하는 근대 과학주의, 서구 근대문물과 기술만을 숭배하는 실용주의 등을 모두 '나쁜 소리'로 구정하였고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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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시 말해 모든 "삶의 터전의 주체인 자아를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일임을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로부터 나온 "사람을 구하라!!"는 그의 지상과제이며 급선무가 되었던 것이다.

P250

그러므로 "루쉰은 자기 내면에서 심각한 고민과 갈등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서방 근대 개념들을 소개하는 것을 '가짜'라고 보고 이를 배척하였다. 자신 내면에서 절실하고도, 커다란 거부감과 갈등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을 개조하고 똑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가 그의 생각이었다. 루쉰은 평생 '가짜 지식인'에 대한 비판을 늦추지 않아싿.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과학, 진화론 등 신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옳으나, "그들의 정신 상태는 '만 가지로 짖어대느 똑같은 울음소리'와 같이, 자기 자신의 진실한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세에 소리에 따라 소리를"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루쉰이 보기에 그들은 "타인의 자아와 개성을 압살하는 '신앙없는 지식인'"일 뿐이었다. 그드이 가짜인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다수 혹은 밖으로부터 들어온 권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 혹은 민족의 내심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P308

서구 근대의 홍수 속에서 비판적으로 자신의 입각점을 찾아간 루쉰니은 근대 주체로서의 자기 발견과, 자기 출발점의 발견을 위해 모든 것을회의하고 부정하였다. 이는 중세 말, 신을 비판하고 신으로부터 탈출한 인류가 신을 버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신을 발견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부정하고 버린 인간이 '인간 자신'의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고 같은 맥락이다. ​그것은 루쉰이, 루쉰 교유의 반전통에 기초한 근대 주체로서의 자기 근거를확립해가는 일이었다. 이러한 자기본위의 발견은 '나는 식인을 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부정의 인식과, 참회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현실에서 주어지지 않는 역사를 창조할수 있는, '혁명'의 거점이자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루쉰식 '혁명'의 유일한 무기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오로지 그 자신뿐이며, 맨손으로 던지는, 야만인들이 사용하는 투창만을 들고 있을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