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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고 윤영규 선생님 추모시

골뫼사니 2022. 4. 23. 07:54

평등·자유·사랑·희망의 다리 놓겠습니다

백목련이 그 화사한 자태를 송이송이 열고 있던 만우절 오후였습니다. 거짓말처럼

선생님의 부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무겁고 나직하게 들려왔습니다.

망연자실, 일순간 가슴에 터엉, 총탄이 뚫고 갔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렇게

쉽게도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저 군사 독재 폭압의 세월을 온몸으로 뚫고 참세상, 참교육의 활로를 열어 오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평생 동안 가난했지만 오히려 삶에 대한 넉넉함 가득찬 분, ‘멀리

봄’의 예지로 스스로를 다그친 분이셨습니다.

이제 그 희망의 한 파도가 저 피안의 해변에 이르렀고, 거대한 해일처럼 우리의

가슴에 슬픔으로 밀려왔습니다. 한없이 죄송합니다. 더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황망히 날개 접으실 줄 ….

1980년 5월 27일 신군부의 도청 진압부대에 ‘죽음의 행진’으로 맞서셨다지요.

이제 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온전히 저희들의 몫으로 돌리십시오.

아, 연세대 89년 5월, 그날의 짧았지만 진했던 감동의 함성이 선생님의 그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들려옵니다. 전교조의 불타는 상징, 윤영규 선생님!

우리들의 영원한 위원장 윤영규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엎어지려할 때 손

내밀어주셨고, 가시밭길 먼저 가시면서 면류관 먼저 쓰셨습니다. 아름드리 큰

느티나무, 늘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시면서 따스한 눈길과 깊은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습니다. 아니 그대로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형님, 전교조 10만 우리들의

사랑이셨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은 당신의 떨리는 목소리로 일어섰고, 그 깊은 눈빛 하나로도

희망을 가졌습니다. 깊이 마시는 담배 향기 속에서 세상의 고뇌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십자가에 우리들의 결의를 달아 올리겠습니다. 당신을

따라 늙어가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평등과 자유, 그리고 사랑과 희망의 다리를

놓겠습니다.

이 시대의 큰 스승이시여! 참교육 참세상의 깃발이시여!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 느낄수록 세상에, 선생님께서 이토록

깊이 우리 속에 계심을 깨닫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고통과 환희를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가슴속에

당신을 초록 생명처럼 묻겠습니다. 부디 부디 편히 잠드십시오, 요단강 건너도,

당신 속에 우리, 우리 속에 당신 영원에 맞닿아 있을 것을 믿습니다.

2005년 4월 4일

장주섭(전남과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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