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승

골뫼사니 2017. 6. 10. 07:58

찔레꽃에 당신의 이름을 붙입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찔레꽃을 떨구고 갑니다.

그러면 이팝나무 꽃꽃마다에 당신의 이름을 걸어 놓습니다.

너무도 태연하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계절은 또 부질없이 찾아와 이팝나무 꽃꽃들을 떨구고 갑니다.

그러면 먼 바다 보이는 무량한 모래밭에 당신의 이름을 적습니다.

맑은 하늘이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은 큰 파도를 부르고 물결을 뭍으로 밀어올립니다.

먼 곳으로부터 온 여행자 숨찬 바다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모래밭에 새긴 당신의 이름을 쓰으윽 지웁니다.

알았어요, 알겠어요 당신들의 애잔해 함을

이렇게 철썩이면서 바위에 적진 말아요

영원이란 지워지는 것

이처럼 가르치면서

바다는 파도와 물결로 당신의 이름을 지우고 갑니다.

 

날이 가고 해가 가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맑은 하늘에 구름이 가고 오고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생기고

봄이 꽃을 피우고 가을이 꽃의 죽음을 들고

생명의 씨앗을 겨울의 뱃속에 넣었다가

다시 봄으로 돌려주고

 

존재의 아름다움과 부재의 아름다움이

있고 없음의 자리바꿈 또한 이토록 찬란하니

우리도 먼 세상 바라보며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호흡 속에 앉아보려나 봅니다.

있고 없음의 부질없는 슬픔으로부터 이별하나 봅니다.

 

가난했으므로 내게 별이었던,

책임 많아서 힘들게 보여 내게 슬픔이었던,

내가 더 많이 함께 하지 못해 못내 아쉬움이었던,

있고 없음 때문에 내게 아픔이었던.

존재와 부재 사이 조준승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