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로베르트 발저의 글을 옮김

골뫼사니 2017. 3. 24. 12:29

나는 자신이 영리하다고 상상할 때만 영리하고, 영리함을 정말로 입증해 보여야 하는 순간이 오면 즉시 영리하기를 멈춰버리는, 그런 이상한 인간에 속하지 않는지....

나에게 지적이고 아름답고 재치 넘치는 생각들이 한없이 많이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어떻게 활용하려고 하면 즉시 나를 배반하여 떠나버렸고....

나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항상 생각하고, 생각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들은 생각하지 못한다.

....

내 천성은 어리석고 유치한 구석이 아주 많으며 거기에 대해 자만심과 허영심은 아주 강하다....

뭔가를 써야 하는 펜은 책상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내 손 안에서 가만히 멈추어 서 있다. ...비열하고 양심 없는 게으름뱅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한 채...

나는 언제든지 할 수만 있다면 몽상에 빠진다.....


장주섭에 대한 장주섭의 생각을 발저의 글을 읽다가 떠올려 적어본다.

<가만히 좀더 나를 성찰해보면 나는 욕심과 욕망은 하늘보다 높고(더러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치부이기에 숨기지만) 게으르고 창의적이지 못하다. 특히 말은 타인 앞에서 잘 꾸며 그럴 듯하게 하며, 돌아와 책상 앞에서 진정으로 내 생각을 글로 적어보려 하면 그 꾸몄던 것이 내 진액의 삶이 아니었으므로 글로 재현되지 못한다. 이 치욕의 책상 앞, 나는 그때 절망한다. 그러나 또 짐짓 책상을 벗어나 일상에 있다보면 쓰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마치 정말 최고의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으로 인하여 책상에 앉기도 한다. 그렇지만 책상에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적고 노는 일에는 전심전력을 다한다. 그 고독과 무료와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재미있게 놀 것을 찾는다. 노는 것과 맛있게 먹는 것에는 창의적인 생각이 넘치고 넘친다. >고 욕심은 넘치고.....





다시 발저의 책에서

사무실로 작은 책을 가져와 붙어 있는 페이지들을 잘라서 펼치고, 독서의 쾌감을 느
끼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읽는다. 그러면 고상하고 반항적인 교양인으로 평범한 타인들보다 더 뛰어나고자 하는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나는 언제나 남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으며, 우월함을 좇아 사냥개처럼 덤벼든다. ...그렇게 독서에 푹 파묻힌 인간의 자세를 취했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하고 나면 , 더 이상은 읽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가식적이고 효과만 계산하는 나는 허영심은 강하지만 기묘하게도 값싼 만족으로 채워진 허영심이다.


장주섭에 대한 장주섭의 생각을 발저의 글을 읽다가 떠올려 적어본다.

<나는 동료 교사들에게 학생들에게 은근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처럼 보이기를 좋아하는 인간이다. 어떤 책도 깊게 넓게 읽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렇다. 깊게 넓게 읽어 온전히 이해하고 지은이에 대해 충분히 다른 자료를 통해 파악하고 내 삶을 변화시키고 하는 것. 이런 것은 내게 거리가 멀다. 나는 다이제스트식 책읽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아는 것, 이것이 내 지적인 생리다. 어찌하여 이런 독서 삶을 살게 된 것인가. 너무도 많이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일까? 나는 신문도 다른 사람의 얘기도 건성으로 읽고 듣는다. 타인의 말을 핵심을 제대로 다른 타인에게 옮기지 못한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그 결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발저의 책에서

내 삶은 지극히 작고 사소한 것으로 이루어졌다. ...인류의 운명과 관련한 위대한 이상을 추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본성은 추종보다는 비판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일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이다.<크흐 장주섭은 이렇다. 처음에는 위대한 이상을 추종하였지만 내 본성은 비판에 따른 창조적 대안과 그 대안을 실천할 의지와 부지런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은 추종하는 인간으로 변화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배움의 욕구에 굴복하는 일보다다 내 존엄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는 것이다. .... 내 마음이란 것이 과연 있을까? 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물론 슬픔이란 감정은 확실히 있지만, 그 감정을 언제 느껴야 진짜 슬픔일까? ......


배수아 해설 중에서

1차대전 후 그는 셋방에서 셋방으로 문단에서도 배제되고 가난은 글 더욱 옥죄었다. 폭음, 불면증, 환청, 악몽과 불안 발작에 시달렸다. 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한 이유에 대해 그는 "나는 심지어 올가미조차 제대로 맬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1929년 그는 베른의 발다우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의 어머니는 만성우울증 환자, 형제 중 한 명은 18년 동안 정신병원에 있다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역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다. 그는 불행을 고립을 가난을 앓았다. 그는 이후 대부분의 생애를 종이봉투를 붙이거나 콩을 분류하는 등의 단순 노동으로 보냈다.


다시 로베르트 발저의 책에서

원래 불리한 우연은 인간의 어떤 특정 무리나 단체 중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 혹은 가장 하찮은 구성원에게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무작정 천진난만하게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천하의 등신이라고......


.... 그라이펜 호수

.... 길을 걸으면서 이곳은 더 이상 나에게 독특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몰아의 상태로 계속해서 걸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