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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호남 참패 야당이 제1당, 더민주 '미스터리'

골뫼사니 2016. 4. 15. 08:53

호남 참패 야당이 제1당, 더민주 '미스터리'

[4.13 총선평가①] 지역구도에서 세대구도로... '2040세대'가 결과 바꿨다

16.04.14 20:24l최종 업데이트 16.04.14 20:24l
2016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으로부터 제1당의 지위를 가져온 것도 충격적이고, 국민의당이 더민주로부터 호남 맹주의 지위를 가져간 것도 그렇다. 이런 선거결과는 이전의 어떤 선거에서도 볼 수 없었다.

가장 의아스러운 대목은 더민주가 지금까지 민주진영의 최대기반이었던 호남의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어떻게 지역구에서는 새누리당보다 5석을 더 얻어 원내 제1당이 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힘이 호남의 완전한 지지가 없이도 더민주를 원내 제 1정당으로 만들었을까.

더민주 승리의 원동력은 2040세대의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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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1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 책임을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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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은 바로 20대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세대가 보여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 의지였다.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간절함이 더민주를 이번 총선에서 승리토록 한 원동력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더민주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 그리고 대구에서마저 1석을 얻을 수 있던 것도 결국은 2040세대의 힘이었다. 부산, 경남, 대구, 울산, 강원에서 더민주와 무소속이 당선된 지역은 모두 젊은 세대 비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세대 구도가 지역 구도를 능가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2040세대는 문재인을 지지했고, 5060세대는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러나 예외 지역 두 곳이 있었다. 호남과 대구·경북이 그곳이었다.

호남은 모든 세대가 문재인을 지지했고, 대구·경북은 모든 세대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2012년 당시 출구조사에 따르면, 호남은 2040세대(90~95%)는 물론 50대(90%)와 60대(85%)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대구경북은 50대(90%), 60대(95%)는 물론 2040세대에서도 70%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호남과 대구·경북에서도 세대균열이 발생했음을 보여줬다. 호남에서 2040세대는 더민주를 지지했고, 5060세대는 국민의당을 지지했다. 대구·경북에서도 5060세대는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2040세대는 더민주와 무소속을 지지했다. 이제 한국정치에서 세대구도가 주요 균열이 되었고, 지역구도는 부차적인 균열로 밀려났음을 알 수 있다.

2040세대가 야당을 지지하고, 60대 이상 세대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일관된 흐름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그 이후 보궐선거와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패했던 야권이 이번에 극적인 승리를 하게 된 다른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간절함의 크기'였다. 이전에 기고한 기사(현실화된 야권 궤멸, 이제는 간절함에 달렸다)에서 더민주 지지자들과 2040세대 유권자들의 적극적 투표 의지가 드러난 여론조사 결과에 주목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간절함이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간절함이 크면 그것은 확산되고 전염된다. 그 힘으로 역사는 만들어졌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의 기본원리는 간절함이 큰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총선 전 여론조사는 더민주 지지자들과 2040세대의 적극적 투표 의지를 보여줬다. 예를 들면, 리얼미터가 3월 28~30일 조사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참조)에서 정당별 적극적 투표의향 비율(평균 56.9%)은 ▲더민주 76.8% ▲정의당 63.3% ▲새누리당 51.9% ▲국민의당 49.6%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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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과 20대 총선 세대별 투표율 비교.
ⓒ 유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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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2040세대의 적극적 정치참여, 그들의 간절함이 더민주가 호남의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원내 제1당이 되는 총선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역구도의 '87년 체제' → 세대구도의 '16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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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숙인 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20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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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는 단순한 일회성이 아닐 수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 선거 승리를 이끌어 온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선언하는 동시에 1987년 이후 한국정치의 중심균열이었던 지역구도가 극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2011년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 책에서 1987년 총선 이후 반복되는 선거구도인 지역구도가 점차 세대구도로 변화되고 있고, 조만간 세대구도가 지역 구도를 능가하는 선거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2012년 대통령선거가 그런 선거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제20대 총선에서 그 예측이 맞았다. 이것이 갖는 현실적 의미는 앞으로 2040세대가 한국 정치의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한국 정치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치적 리더십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이들에게 있다는 것을 이번 총선결과는 보여줬다.

지난 시기 호남을 빼고 민주 진보 진영을 생각할 수 없었듯이, 지금은 노무현을 빼고 민주 진보 진영을 생각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였던 시절에는 정권교체의 가장 큰 힘이 호남 유권자들의 간절함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듯이, 2017년의 정권교체 힘은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2040세대의 간절함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호남 패러독스'
'문재인 필패론'은 허구였다

[총선평가②] 더민주, 제1당 승리는 호남의 국민의당 선택 명분 없애

16.04.17 11:32l최종 업데이트 16.04.18 18:48l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 후 호남 사람들의 마음은 꽤 오랫동안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후보에게 패하고, 정계를 은퇴한 후 영국으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서쪽 하늘만 보면 저 너머에 김대중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괜히 서러웠다고 했다.

이번 총선을 전후하여 나는 호남 사람들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특히 총선 결과에 대한 당혹감이 컸다. 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있던 '문재인 비토론'이 그야말로 여실히 현실로 드러났는데, 그것이 너무도 민망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민망함이 1992년 대선 이후의 서러움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호남 출신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관련되어 18년 세월을 일해 오다가 보니, 호남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한다. 내 처가가 광주인 것도 호남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을 수도 있다. 그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광주 출신인 것을 삶의 큰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그것이 이번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총선 직후 호남에서 더민주 지지율 상승, 국민의당 지지율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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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호남방문 2일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전북대 앞에서 김윤덕(전주갑), 최형재(전주을), 김성주(전주병) 후보와 유세를 하며 지역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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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 28석 중에서 23석(더민주 3석, 새누리당 2석)을 가져갔다. 의석수만으로는 국민의당의 압승이지만 지역구 득표율은 더민주 37%, 국민의당 46%로 9%p 차이(광주 34%-56%, 전북 39%-42%, 전남 38%-44%)였다. 호남맹주의 자리를 국민의당이 더민주로부터 뺏어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호남에서 더민주의 위상은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 결과는 대체로 40대 이상은 국민의당을, 40대 이하는 더민주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출향한 호남 사람들, 특히 50대 이상은 다수가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호남 출신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이 20%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강남과 분당에서도 더민주 후보가 당선된 이번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이나 경기도 안산처럼 호남 출신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흔히 야당의 텃밭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오히려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총선 직후 독특한 여론조사가 발표되었다. 알앤서치가 총선 다음날인 14일 조사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호남에서 승리한 국민의당은 호남 지지율이 4%p가 하락해서 43%에 그친 반면, 호남에서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은 15%p나 급등해서 39%를 기록하여 국민의당의 턱밑까지 추격했다는 것이다.

아직 하나의 여론조사 결과이므로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호남 민심의 복잡함, 선거 이후의 민망한 마음을 보여주는 조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선거가 다 끝난 후 여론의 반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 정치 특히 야권에서 호남의 비중을 생각할 때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아직 호남의 선택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남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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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개표결과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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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호남은 왜 더민주를 버리고 국민의당을 지지했을까? 그것은 '문재인 비토' 감정 때문이었다. 바로 그 '문재인 비토' 감정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는 '박근혜 심판'이 선거 쟁점이었을 때, 오로지 호남에서만 '문재인 심판'이 선거 쟁점이었다. 그리고 선거 결과도 다른 모든 지역은 박근혜 대통령을 심판했는데 반해 오로지 호남만이 문재인 전 대표를 심판한 것이다.

내가 들은 호남에서의 '문재인 비토론'은 그 정도가 심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옮겨가서 이번에 당선된 호남의 기득권 국회의원들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고 증폭된 것들이었다(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그것은 한마디로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이었다.

그런데 호남의 '문재인 비토론'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속내는 앞에서 지적한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과 같은 정서적인 것이었던 반면, 겉으로 주장되는 명분은 다른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재인 필패론'이었다. 즉, "문재인과 더민주로는 절대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이라는 주장이 '문재인 비토론'의 명분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필패론'의 논리를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은 지난 대선 직후 더민주 대선평가위원장으로 대선 평가를 주도하고, 이후 국민의당 창당위원장으로 활동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다.

그는 대선 평가에서 "18대 대선 패배로부터 민주당이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노무현과의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노무현·친노·문재인과의 이별' 없이는 대선 승리도 없다며, "어차피 이번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더민주)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며 국민의당 창당을 주창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는 '문재인 필패론'이 허구였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과 더민주로는 절대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는 주장과 달리 더민주는 지역구에서 새누리당보다 5석 더 많이 당선되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 대구에서도 1석이 당선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호남 없이도 그런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호남 패러독스', '호남의 역설'이다. 문재인과 더민주로는 정권 교체도 선거 승리도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조하여 이번 총선에서 호남이 몇 십 년동안 지지해온 더불어민주당을 버리고 국민의당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총선 결과로 드러난 사실은 '문재인 필패론'이 아니라 거꾸로 호남 없이도 선거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호남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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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호남방문 2일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전북대 앞에서 김윤덕(전주갑), 최형재(전주을), 김성주(전주병) 후보 지원 유세를 마치고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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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번 총선 결과는 지금까지 국민의당이 주장한 창당의 명분, 호남의 일부가 주장한 '문재인 필패론'의 명분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이번 총선 결과는 더 이상 호남이 민주진영의 대주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번 총선 결과는 전국의 2040세대가 민주진영의 대주주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20대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세대가 보여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의 힘, 더는 민주주의 후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간절함이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한 원동력이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호남이 문재인과 더민주를 비토하면 몰락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호남은 이번에 문재인과 더민주를 한 번 혼내주려고 다른 선택을 했는데, 그 결과 놀라운 진실을 보고 만 것이다. 호남이 더는 민주 진영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잘못된 선택을 통해 확인하고 만 것이다.

호남의 잘못된 선택은 결국은 스스로 민주진영의 중심 지위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호남은 문재인에 대한 서운함, 왜곡되고 조작된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지금까지 지켜온 민주주의의 수호자, 민주진영의 중심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지경에 오고 말았다.

이제 호남의 낡은 정치인들이 자기들이 살아남으려고 만들어낸 허상의 '문재인 비토론', '문재인 필패론',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이 가져온 민망한 결과를 호남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눈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그것은 전국으로부터 고립되었으면서도 홀로 민주주의를 지켰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민주정부 10년을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수호자, 그 존경받던 호남의 모습이 더는 아니다.

그런 모습에 지금 호남 사람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내가 주변에서 듣는 목소리도 그렇고,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한마디로 호남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호남의 선택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호남의 이런 당혹감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호남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당신들이 민주주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존경받아왔던 그 역사성을 복원할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야권 압승이 국민의당 때문? 따져봤습니다

[주장] 정권심판론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은 야권, 겸손해야 한다

16.04.18 18:08l최종 업데이트 16.04.18 18:23l
20대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당을 변수로 주목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국민의당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만약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1대1 대결로 갔으면 패배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사실일까?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철수의 정치적 결단이 참패 위기에 놓인 야권의 정치적 운명을 뒤바꾼 신의 한 수였던가?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안철수 대표의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제3당이 야권의 외연 확장에 기여해 야권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지지층 중에서 새누리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정치적 무당파의 지지를 유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분열은 전통적 지지층의 분화를 의미하기에, 새누리당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비호남 지역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에서 이 두 주장(외연 확장과 전통적 지지층 분화)은 모두 존재했다. 다만 이로 인한 손익을 셈했을 때 결과적으로 야권에 플러스가 된다고 보는 쪽이 긍정론, 마이너스가 된다고 보는 쪽이 비판론이다.

국민의당, 지역구에서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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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4일 오전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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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는 어떨까? 비례대표 의석수 증가가 큰 성과라는 건 틀림없지만 관건은 300개 의석 중 253개 의석이 달려 있는 지역구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한 것도 결국 지역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도 국민의당 변수가 영향을 주었을까?

야권이 지역구에서 대승할 수 있었던 것은 3개 권역에서 19대 총선보다 좋은 결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압승했고, 충청권에서는 대등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영남권에서 선전했다.

그런데 이 세 지역에서 외연 확장을 이룬 정당은 국민의당이 아니라 더민주다. 국민의당 은 원래 야권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지역에서 의석을 차지했다. 그 외의 지역에서 국민의당은 새롭게 지역구 의석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민의당은 비례대표와 달리 지역구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더민주는 외연확장을 하기 어렵다'는 안철수 대표의 말은 지역구에서는 틀렸다.

이에 대해서 안철수 대표의 논리를 옹호하는 측은 이런 반론을 할 것이다. 국민의당이 주연이 되지는 못했지만 새누리당 지지층의 표를 잠식하여 결과적으로 더민주 후보를 도와주는 중요한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구체적인 선거 결과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이를 위해서 국민의당 창당 전인 2012년 19대 총선 결과와 국민의당 창당 후인 이번 총선 결과를 비교해보려고 한다. 비교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하여 가급적 19대와 20대 선거에서 후보자가 동일한 경우를 우선적으로 인용했다.

새누리에서 더민주로 넘어가기도

먼저 두 선거를 비교해서 보면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더민주 지지로 이동했거나, 기존 무관심층에서 더민주 지지층으로 이동했다는 가능성이 포착된다. 이 경우는 더민주 자체가 외연확장을 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안철수를 비롯한 국민의당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핵심 근거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국민의당 후보가 없어서 사실상 여야 1:1 대결로 두 차례 선거를 치른 경우를 보면 좀 더 선명하다. 이런 사례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서울 동대문을 지역구를 보면 19대 때에는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가 44.5%, 민병두 민주통합당 후보가 52.9% 기타 2명의 후보들이 1.56%를 얻었다. 그런데 이 번 20대 총선에서는 박준선 새누리당 후보가 38.2%, 민병두 더민주 후보가 58.2%, 민중연합당 후보가 3.7%를 얻었다.

부산 북강서갑의 경우 19대 때는 박민식 새누리당 후보가 52.4%, 전재수 민주통합당 후보가 47.6%를 얻었는데, 이번엔 박민식 후보가 44.1%, 전재수 더민주 후보가 55.9%를 얻었다. 서울 은평갑, 부산 사하갑과 남을 지역구 등도 마찬가지다.

여기 언급한 사례는 모두 야권이 승리한 지역이지만, 패배한 지역에서도 더민주 후보들의 외연확장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의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강남구다.

강남갑의 경우 19대 때는 심윤조 새누리당 후보가 65.32%, 김성욱 민주통합당 후보가 32.83%, 기타 후보들이 1.82%를 얻었었다. 그런데 20대 때는 이종구 새누리당 후보가 54.8%, 김성곤 더민주 후보가 45.8%를 얻었다.

20대 때는 19대 때 강남갑에 속한 삼성동과 도곡동이 병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해당 동의 새누리당 지지세는 갑 지역에 속한 다른 동의 평균 정도다. 그래서 동 이동에 따른 영향은 사실상 없었다. 그만큼 더민주 후보 지지층이 급증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강남병 선거구에서도 나타난다. 이 지역에서는 더민주가 새누리당 지지층과 기존 무당파의 표를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강남구 사례를 특별히 언급한 이유가 있다. 이번에 더민주 후보들이 부산경남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펼친 것을 두고 지역적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즉,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우세하면서 상대적으로 더민주의 호남색이 약화되었고, 이것이 영남에서 선전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지역적 변수만을 중심에 놓고 설명하면서 다른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리로는 보수 여권지지 성향이 매우 공고하고 출향 영남 출신 엘리트들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구에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강남갑의 김성곤 후보는 호남에서 3선을 하다가 당에 대한 봉사 차원에서 강남갑 지역에 출마한 경우다. 사실상 강남구와 관련이 거의 없는 호남 중진의원이 선거를 얼마 앞두고 출마했음에도 45.8%를 득표한 것은 정권심판론을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지역구에서 국민의당은 새누리보다 더민주 지지층을 잠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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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개표결과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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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살펴본 경우는 국민의당 후보가 없었음에도 더민주 지지율이 올라간 몇 가지 사례였다. 다음으로 국민의당이 존재했음에도 더민주 후보자들이 새누리당 지지층 및 무당파 지지층을 끌어들인 것이 확인된 경우다.

국민의당 후보가 있었음에도 더민주 후보 지지율이 19대와 20대 모두 동일한 수준으로 나왔다면 이는 더민주 지지층이 확장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민의당 후보들이 더민주 지지층을 잠식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을 지역을 보면 19대 때는 정두언 새누리당 후보 49.4%, 김영호 민주통합당 후보는 48.5%, 김종수 국민행복당 후보는 0.97%, 홍성덕 정통민주당 후보는 1.12%를 얻었다. 20대 때는 정두언 새누리당 후보 39.9%, 김영호 더민주 후보 48.9%, 홍성덕 국민의당 후보가 11.20%를 얻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서울 종로, 중랑을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그렇다면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새누리당 중에서 어느 쪽 지지층의 표를 더 잠식할까? 대략적인 수준을 가늠하기 위하여 19대와 20대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더민주 후보가 동일하고 국민의당 후보만이 20대에 추가된 사례를 골라보았다. 이런 경우가 서울 구로을과 영등포을 지역이다.

구로을 지역을 보면 19대 때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는 35.05%, 박영선 민주통합당 후보는 61.94%, 심재옥 진보신당 후보 3%를 득표했다. 20대 때는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가 31.5%, 박영선 더민주 54.1%, 정찬택 국민의당 후보는 12.6%, 기타 1.7%였다.

19대와 비교해서 보면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는 3.55%p, 박영선 더민주 후보는 7.84%p 하락했는데, 이 둘을 합하면 11.39%p가 된다. 국민의당 후보는 대체로 두 후보에서 이탈한 정도의 합만큼 득표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더민주 지지층 이탈이 새누리당 지지층 이탈보다 2.21배 정도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

영등포을 지역을 보면 19대 때 권영세 새누리당 후보가 47.4%, 신경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52.6%를 얻었는데, 20대 때는 권영세 새누리당 후보 37.7%, 신경민 더민주 후보 41.1%, 김종구 국민의당 후보 18.7%, 기타후보들 2.5%를 얻었다. 권영세 후보와 신경민 후보는 국민의당이 등장한 이후 각각 9.7%p, 11.5%p의 득표율이 하락했다. 이만큼을 국민의당 후보와 기타 후보들이 얻은 것이다. 이 지역 더민주 지지층 이탈이 새누리당 지지층 이탈보다 1.2배 정도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지역구별로 사정이 균일하지는 않으므로 이탈율의 정도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더민주 지지층의 이탈이 새누리당 지지층 이탈보다 많았다는 정황근거는 있다. 국민의당 후보들 상당수가 기존 민주당 계열 출신 정치인들이고, 정치 신인들 역시 야권에 연고를 갖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민주당 계열 정당의 분당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게 보면 앞에서 종로, 중랑을, 서대문을처럼 더민주 후보가 국민의당 후보들이 있었음에도 19대와 20대 때 동일한 득표율을 보이는 경우, 더민주 후보들은 국민의당 후보들보다 더 많은 외연확장(새누리 지지층 + 무당파)을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지역구에서 국민의당의 효과는 마이너스였다

위와 다르게 국민의당 변수가 지역구 선거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여럿 있다. 우선 더민주와 국민의당 후보 합산이 새누리당 후보 득표율을 넘은 지역이 총 33개이고 그 중 수도권이 23개 지역에 달한다.

서울의 경우 새누리당이 12곳을 이겼는데, 새누리당이 자력으로 50%를 넘긴 강남갑, 병 그리고 서초 갑 3곳의 지역구를 빼면 9곳이다. 여기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40%가 안 되는 관악을, 중·성동을, 강북갑 지역은 야권 단일화가 이뤄졌으면 야권 후보의 승리가 매우 높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 외 지역이 6곳(도봉을 43.7%, 강서을 45.9%, 동작을 43.4%, 서초을 46.8%, 송파갑 44%, 양천을 42%)이다. 역대 선거 경향을 볼 때 서초을과 송파갑 지역의 경우 야권이 승리하기 어렵다고 가정한다면, 4곳이 남는데 독자적으로 50%에 근접한 강서을 지역을 빼고 40% 초반 지지율을 보이는 도봉을, 양천을, 동작을 3곳은 야권연대를 했을 경우 치열한 경쟁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패턴은 경기, 인천, 대전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인천 부평갑, 경기 안산단원갑, 안산단원을 등 3개 지역은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이 40%을 넘지 못한다. 이 지역을 보면 더민주와 국민의당 후보들이 2등과 3등을 했는데, 3등한 후보(더민주 3곳, 국민의당 3곳)들이 20%를 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권표가 2등 후보에게 몰리지 못하고 분산된 것이다.

이처럼 야권분열에 따른 패배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는 지역이 6곳이다. 이 외에도 야권후보들이 낙선한 경우를 보면 3등한 야권 후보와 2등한 야권 후보와의 격차가 적게 나타난 경우이다. 그리고 서울 동작갑처럼 야권 강세 지역에서 더민주 후보가 당선된 경우에도 3등 후보가 선전할수록 2등을 한 새누리 후보와의 격차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지역구에서 야권 분열은 야권 전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주지 못했다. 6곳은 야권분열에 따른 패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몇 곳은 새누리당과 1:1 구도가 형성되었으면 야권 후보가 승리했을 것이다.

야권의 승리는 정권심판론에 따른 반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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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1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 책임을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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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지역구에서 야권이 압승을 하게 된 것은 안철수와 국민의당 때문이 아니다. 정권심판론이 강하여 야권에 대한 지지가 몰렸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내일신문>은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을 통해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었다.

여론조사 결과 55.3%가 이번 총선을 여당 심판 선거로 보고 있었고 22.6%만이 야당 심판론에 동조하고 있었다. 특히 서울의 경우 61.4%가 정권심판론에 동조하고 있었다. 수도권 야당 압승의 원인을 알 수 있는 근거다.

그러함에도 여러 기술적 한계가 있는 지역구 단위 여론조사 결과가 여당에 유리하게 나오고 이것을 중심으로 공론이 형성되다보니 저변에 깔린 정권 심판론의 위력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산 경남 울산과 같은 야권의 약세 지역과 충청권처럼 경합 열세 지역에서 더민주후보들이 좋은 성과를 낸 이유는 정권심판론과 함께 후보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수차례 낙선을 거치면서 꾸준히 지지세를 넓혔거나, 지역구가 야권에 유리하게 개편되었거나, 지역 경제 요인 등이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더민주와 진보 세력 사이의 야권 단일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도 국민의당의 긍정적인 역할을 찾는 것은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진보 야권은 2006년, 2007년, 2008년 3대 선거에서 궤멸적 타격을 받은 이후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점차적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도 야권에게 여러 마이너스 요인이 있었고, 야권이 대안 세력으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누적된 뉴라이트 등 보수 세력에 대한 불만이 그 임계점을 돌파하여 야권의 마이너스 요인을 상쇄하고도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압승은 야권이 잘해서 얻은 성과가 아니다. 따라서 야권은 겸허해져야 한다. 더민주가 제1당이 된 것은 본인들이 잘해서 얻은 결과 아니다. 그리고 국민의당 역시 야권의 대승에 자신들이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병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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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
[유라시아 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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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종언

오후 2시, 일상을 멈추었다. 평소라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배웠을 시간이다. 새벽에는 나랏말로 글을 쓴다. 오전에는 남의 나라 말로 책을 읽는다. 오후에는 새 말을 익혀간다. 지난 2월 델리 입성 이래, 단조로운 일과를 반복한다. '인도에서 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할지도 모르겠다.

도로 간판에도 새겨져 있다. 대영제국에 앞서 무굴제국이 있었다. 무굴은 몽골의 적자였다. 서북에서 남진하여 델리에 터를 잡았다. 몽골화된 이슬람, 혹은 이슬람화된 몽골의 후예였다. 이슬람이 국교의 지위를 누리며 아랍어가 보급되었다. 조정은 페르시아어를 통하여 제국을 경영했다. 산스크리트어와 페르시아어 간의 사상 교류가 활달했다. 천 년의 전성기를 보낸 이슬람문명이 인도에 소개되었고, 힌두 문명의 정수를 담은 고전들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번역되었다. 토착 문화와 외래 문화가 대융합되었다.

지금도 인도는 이란과 지척이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사이에 두고 있다. 서인도는 아라비아해를 '지중해' 삼아 중동과 마주본다. 내 아랍어 선생님은 두바이에서 왔고, 페르시아 선생님은 테헤란에서 왔다. 벵골만에서는 동아시아가 가깝지만(Look East), 아리비아해서는 서아시아가 이웃(Look West)이다.

동아시아는 불교로 연결되었고, 서아시아는 이슬람으로 이어졌다. 이 남아시아와 서아시아 간 문명 혼합을 샅샅이 기록한 연구서들은 또 영어와 일본어가 많다. 오전과 오후, 하루를 통하여 반천 년 인도(사)의 유산을 훑어가는 셈이다. 이 땅에서 펼쳐졌던 힌두 문명과 이슬람 문명, 유럽 문명 간 교섭의 파노라마를 추체험한다. 이 '유라시아 르네상스'의 대장관은 콜카타와 델리를 살필 때 다루어볼까 싶다.

이날만은 1:1 수업을 받지 않고 단골 카페에 진을 쳤다. 커피도 짜이도 아니고, 킹피셔 맥주를 주문했다. 40도 불볕더위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킹피셔는 언제나 일품이다. 한 모금 목을 축이고, 노트북을 열었다. 유투브에서 라이브로 중계되는 JTBC 개표 방송에 접속했다. 지난 총선 때는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 이번에는 델리이다.

4년 사이 기술은 더 진보했다. 실시간으로 연결된다. 시공간의 장벽이 온라인을 통해 사라졌다. 하건만 나라꼴은 더 나빠졌다.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들의 예측은 더 흉흉했다. 180석을 운운했다. 나는 만반으로 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한 병을 비우고 두 병째를 시킬 무렵, 출구 조사가 발표되었다. 취기가 싹 가셨다.

설마 과반이 무너질 리야. 계속 주시했다. 인도양의 해가 지고, 달이 떴다. 12시를 지나 새 날이 되었다. 제1당마저 교체되었음을 확인했다. 그제야 인터넷 창을 닫았다. 노트북도 접었다. 마지막 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속이 시원했다. 후련했다. 昏君(혼군)을 혼쭐냈다. 혼꾸멍내주었다.

'백성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침몰시키기도 한다'고 했던가. 국민들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했다. 과연 민심은 무섭다. 가히 천심은 무겁다. 가뿐해진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요금을 세 배로 뻥튀기하는 오토릭샤 기사가 전혀 짜증스럽지 않았다. 쏘아보지도, 실랑이도 하지 않았다. 옜다, 흔쾌히 지불했다. 기분을 좀 내었다.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니 이메일과 카톡 메시지가 여럿이다. 한반도와 아대륙은 3시간 반의 시차가 난다. 동방의 아침에서 남방으로 보내온 전갈들이다. '그래도 한국 민주주의는 건강하다, 아직은 살아있다.' 신이 난 모양이다. 잠이 확 달아났다. 속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인도의 민주주의에 앞서 한국의 민주주의부터 잠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쓰던 글을 미루고, 새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 밤 사이, 걱정의 방향이 바뀌었다.

뉴스가 뉴스를 덮는다. 오늘의 뉴스가 어제의 뉴스를 지운다. 뜻밖의 결과가 망각을 더욱 부추긴다. 선거를 앞두고 야당들은 가관이었다. 막장이었다. 난맥상의 연속이었다. 더한 막장이 못한 막장을 덮었을 뿐이다. 漁父之利(어부지리)였다. 어부지리로 제1당이 교체되었고, 어부지리로 제3당이 약진했다. '묻지 마 투표'였다. 비호남에서는 전국 여당을, 호남에서는 지방 여당을 심판했다. 진검 승부는 없었다. 반대편의 실력은 따지지 않았다. 재차 과거에 대한 회고적 투표였다. 미래에 대한 생산적 논쟁은 없었다. 소 뒤 걸음으로 쥐 잡은 격이었다.

그래서 큰일이다. 과잉 대표되었다. 실력에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의석을 가졌다.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소선구제의 혜택을 이번에는 야당들이 누렸다. 그런데도 딴소리다. 유권자의 현명한, 절묘한 선택이란다. 황금 분할이라며 과대평가한다. 서둘러 교화의 자세를 거두고 대중들의 집합 지성에 머리를 조아린다.

정당도 언론도 직시보다는 포장과 아부에 능하다. 기시감이 인다. 탄핵 바람을 탔던 정당이 있었다. 반짝하고, 금세 졌다. 실력 이상의 역할이 주어지자 지레 주저앉았다. 자질이 안 되고 자격이 부족한 이들에게 자리를 맡기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깜냥이 안 되고 재량이 아닌데도 과분하게 오르면 추락만이 기다릴 뿐이다.

야박해지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기울었다. 보수가 천하를 삼분했다. 야당들의 우경화가 우심했다. 강성 보수, 중성 보수, 연성 보수가 3당 체제를 이루었다. 진보 정당은 존재감을 잃었다. 소수의 명망가 집단이 되었다. 그 면면마저 이제는 식상하다. 곧 흡수 소멸될지 모르겠다.

얻은 바도 없지 않다. 어르신들이 20세기의 미망에서 벗어나셨다. 박정희 향수에서 깨어나셨다. 분단 체제에 기생했던 산업화의 기적이 흘러간 옛 노래임을 인정하신 것 같다. 불행한 개인사의 공주에 대한 연민과 동정만으로는 손주들의 장래가 열리지 않음을 수긍하신 것 같다. 그들마저 여왕의 오기와 독선에 학을 뗀 것이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지지를 철회했다.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탄핵에 동참하셨다. 반동과 복고의 세월에 그들이 제동을 걸었다.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말자. 오판은 삼가야 한다. 민주화 시대의 적통을 자처하는 정당도 정당 투표에서 세 번째로 밀려났다. 정체를 알 길 없는 오합지졸 정당보다 모자란 성적표를 받았다. 제3당이 보수 표를 흡수해 주었기에, 수도권에서 승리하고 영남에서 선전했을 뿐이다. 나의 自力更生(자력갱생)보다는 남의 自中之亂(자중지란) 덕이었다.

도리어 '민주'도 '진보'도 낡은 느낌이 물씬하다. 근본적인 전환기, 이행기로 진입했다. 산업화+민주화=근대화로 질주했던 '장기 20세기'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공연한 어깃장, 흰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유라시아적 지평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마침 선거 운동 기간, 흥미로운 칼럼 한 편을 읽었다.

역사의 귀환

<파이낸셜타임스>를 즐겨 읽지는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살핀다. 일반 기사들은 거의 보지 않는다. (기자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하루만 지나면 가치가 없어지는 정보화 시대의 산업 폐기물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주요 기사를 쓰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여긴다. 주로 칼럼만 살핀다. 글로벌 공론장의 동향을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다 반가운 이름을 접했다. 피터 프랭코판(Peter Frankopan). 실크로드 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다. 내 킨들에도 그의 책이 저장되어 있다. 중국 신장을 주유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칼럼의 제목은 더욱 눈에 들었다. 역사의 귀환(The return of history)이다. 패러디임에 분명하다. '역사의 종언'을 비틀었다. 혹은 비꼬았다.

독법이 과감하고 시원하다. 내 취향이다. 나는 이중 부정으로 점철된 글을 싫어한다. 판단 보류를 사려 깊음으로 포장하는 美文(미문)을 내켜하지 않는다. 과학과 객관을 표방하는 논문에도 호의적이지 않다. 장차 인공지능이 대신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근대적 역사학, 근대적 사회과학도 막간에 이르렀다고 여긴다. 是非(시비)를 가리고 褒貶(포폄)을 주저치 않았던 옛 학문의 미덕이 되살아날 것이다. 자신을 걸고 써야 한다. 자신을 지우고 쓰는 글은 문장(文)이 아니라 데이터(data)이다. 구태여 사람이 쓰지 않아도 된다. 인문은 人과 文의 결합이다.

프랭코판은 25년 전을 회고한다. 1991년이다. 소련이 해체된 해이다. 희망이 넘쳤다고 한다. 소비에트연방에서 15개의 공화국이 독립했다. 동서독은 통일되었고, 동서구는 통합되었다. 변화의 바람은 유럽, 서유라시아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고, 남아메리카에서는 피노체트가 물러났다.

동유라시아도 보조를 맞추었다. 한국에서는 문민 정부가 출범하고, 여야 정권이 교체되었다. 독재와 억압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듯 했다. 인류의 진보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기민한 후쿠야마는 니체를 흉내 냈다. '최후의 인간'을 전망했다. 자유민주주의가 항상적이고 항구적인 상태가 될 것이다. 정치적 변동이 없는 그 (지루한) 세계에서 인류는 격렬한 스포츠와 위험도가 높은 사업 등으로 재미와 의미를 추구할 것이라고 했다. 크게 잘못 짚었다.

프랭코판은 지난 25년을 '(자유)민주주의의 쇠퇴'라고 정리한다. 승리와 도취의 기억은 이미 희미하다. 긍정과 낙관도 사라졌다. 테러와 난민의 세기에 진입했다. 유럽연합의 지속 여부마저 불투명하다.

그는 새 역사의 방향을 실크로드에서 찾는다. 실크로드에 자리한 국가들이 재차 역사의 중추로 복권되고 있음을 목도한다. 새로운=익숙한 미래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수차례의 밀레니엄, 종교와 철학과 사상과 상품과 동식물과 사람들이 오고갔다. 폭력과 전쟁과 병균도 주고받았다. 그 유라시아적 연결망이 재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은커녕 역사의 출발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응당 정치도 달라지고 있다. 이스탄불과 모스크바와 테헤란과 베이징을 주목한다. 종교와 문명이 상이한 옛 제국들에서 노정되고 있는 정치적 유사성에 착목한다. 황제와 차르와 술탄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민주주의보다는 전통적인 제국적 통치(traditions of royal courts)에 근접해가고 있다.

강력한 권위를 가진 지도자(와 지배층)가 중간층의 발흥을 억제한다. 대자본에 식민화된 생활 세계, 시민 사회를 규율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권위를 위임받고 행사한다.

왕년의 제국들 사이에 자리한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이런 경향을 따르고 있다. 최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선거가 있었다. 공히 현역 대통령들이 재선되었다. 지지율이 80%를 오르내린다. 유라시아 도처에서 구미의 모델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를 그들 자신의 과거 속에서 구한다.

나는 그의 시대 인식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지난 200년의 '진보'만큼이나 역사의 귀환 또한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과거의 반복과 복제만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단어를 고쳤으면 좋겠다. 귀환(Return)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진술이다. 20세기의 경험을 삭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에 단절과 비약은 없는 법이다. 누적과 축적이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득과 실을 두루 겪었다. 그 담금질의 시간을 간과할 수 없겠다. 따라서 재생(Revival)이나 소생(Resurgence), 혹은 중흥(Renaissance)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역사가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니다. 진보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역사'들'은 귀환하고 있다. 문명'들'도 회생하고 있다. 국지적 근대가 물러나고, 지구적 근대가 만개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구미의 주류 신문이다. 주류 가운데서도 주류이다. 그런데도 이런 칼럼이 실린다. 시각은 보수적일지라도 수준은 갖춘다. 방향도 잡는다. 실로 좌/우는 부차적이다. 관건은 깊이와 방향이다. 이 칼럼을 읽은 날, 진보 정당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총선 이후 당명을 사민당으로 바꾸잔다. 1990년대 논객을 대표하는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제서 사민주의? 그 본산인 유럽에서도 퇴화하고 있는 이념이다. 유럽조차 유럽식으로 근대적 정치의 이념형과 멀어지고 있다. 하물며 21세기 천하의 중심이 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20세기의 사민주의를 내세우자고? 시대착오이다. 고루하기 짝이 없다. 魂(혼)이 비정상이다. 魄(백)과 분리되어서이다. 여태 '친밀한 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실소가 터졌다가, 이내 혼자서 진지해져 버렸다.

아직도 유럽의 '지방 방송'을 세계 담론인양 설파하는 유로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상징 자본을 누리며 과도한 발언권을 행사한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민주 대 독재라는 진부한 구도를 거듭 설파하고 주입한다. 그래서 새 사상과 새 정치의 출현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야권 연대에만 집착하고 안달했다.

그들이 협박하고 겁박했던 것과는 달리 야권의 단일 대오 형성이 아니라 보수의 분화를 촉발시킴으로써 정치 개편과 정권 교체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이쯤이면 공론장도 물갈이가 시급하다. 올드 미디어는 물론이요, 뉴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에도 새 담론이 부재하다. 무엇보다 인식과 사상의 지리 감각부터 혁신하고 쇄신해야 한다.

나로서는 부디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신진대장부'들부터 浩然之氣(호연지기)를 발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서쪽으로 기울어진 공론장도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좌우만이 아니라 동서와 고금 간에도 중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선거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백년대계를 세우는, 치국과 평천하에 일조하는 大學(대학)의 본연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재생

자유(민주)주의의 종언을 앞서 짚은 이가 있다. 세계 체제론의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다. 냉전의 종식을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하지 않았다. 세계 체제의 위기라고 했다. 사회주의에 이어 자유주의도 종언을 고할 것이라 했다. 석학의 통찰이다.

하지만 사회과학자의 한계도 노정했다. 세계를 중심-반주변-주변이라는 도식으로만 파악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사회주의 세계 체제로 이행하는 또 다른 단선적 진보만을 전망했다. 그래서 글로벌 친목 모임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든 세계사회포럼에 과도한 기대를 걸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명이라는 역사 공동체의 저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세계 체제론에는 유교 문명, 힌두 문명, 이슬람 문명의 고유함과 독자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 자본과 국가를 규율할 수 있는 지역적 동학, 고전문명의 유산을 간과한다.

이쪽에 방점을 둔 이는 새뮤얼 헌팅턴이었다. '문명의 충돌'을 예언했다. 9.11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과장이었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었다. 이슬람 문명과 중화 문명은 그러하지 않았다. 힌두 문명과 이슬람 문명도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았다. 중화 문명과 힌두 문명은 불화와는 거리가 멀다.

갈수록 더 약여한 현상은 문명 간 길 닦기와 다리 놓기이다. 중화 문명은 철두철미 인문주의이다. 유일신을 믿지 않는다. 인문 정신으로 종교를 포섭한다. 힌두 문명은 넉넉한 다신교이다. 예수도 마호메트도 싯다르타도 공자도 여럿 중 하나로 흡수해버린다. 이들 문명권에서 공히 실크로드가 환기되고 있다. 오래된 길을 복기하고 복구하고 있다.

한국도 미래의 영감을 스스로의 역사에서 구할 때가 되었다. 특히 대당제국기의 신라/발해, 몽골제국기의 고려, 대청제국기의 조선은 유력한 청사진이 되어줄 것이다. 그 세 차례의 '유라시아 시대'에 한반도 국가들이 어떠한 이니셔티브를 취했던가, 혹은 그러하지 못했던가를 곰곰이, 꼼꼼히 따져봄직하다.

고려는 삼국 시대를 정리했다. 조선은 고려 시대를 갈무리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스스로의 관점과 언어로 조선을 마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갈피를 잃은 것이다. 100년간 따라하고 따라갔을 뿐,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지 못한 것이다. 100년 전 '自强(자강)'을 강조한 이가 백암 박은식이다. 지금이야말로 자강의 적기이다. 자각하고 자강해야 한다. 자업으로 자득해야 한다.

민의 열망은 이미 끓어오르고 있다. 바닥에서 새 기운이 꿈틀거린다. 문제는 그 여망을 받아 안을 엘리트 집단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민심과 천심을 받들어 지상의 길을 개척할 전위 집단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백 년을 이끌어갈 신진대장부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요사이 정도전이 뜬다고 들었다. 징후적 현상이다.

헌데 그도 평지돌출이 아니었다. 누적과 축적의 소산이었다. 목은(牧隱) 이색을 잊을 수 없겠다. 당대 유라시아의 최첨단이었던 신유학을 이 땅에 보급했다. 그의 문하에서 정도전도 정몽주도 자라났다. 韜光養晦(도양광회), 30년 한 세대를 절치부심했다. 해방 100주년을 준비하며 새 정치에 앞서 새 사상을, 새 정당보다는 새 학당을 세울 때이다.

잠시 우회했다. 샛길에 든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당과 학당, 정파와 학파의 차원에서도 인도인민당(BJP)은 흥미로운 사례이다. 정파와 종파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정당이 종교 사회 단체(RSS)의 산하 조직이다. 정교 분리가 아니라, 종교의 가르침을 정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 성으로 속을 규율하고자 한다. 속을 성으로 정화하려 한다.

힌두교(古)와 민주주의(今)가 공진화한다. 그래서 '改新(개신) 힌두교'라고 할법하다. 인도의 민주주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실험 또한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영국산 민주주의의 표피가 벗겨지고, 진피에서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혼과 백의 분단체제를 극복해가고 있다. 다시 본궤도로 진입한다. 구자라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21세기의 인도가 출발한 곳이다. '2002'년이었다.